‘네살이 집 2채’ 편법증여에 칼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9일 03시 00분


작년 미성년자 증여 50% 늘어 1兆… 34억 건물주 초등생 등 금수저 타깃
국세청, 불법 혐의 204명 세무조사


치과의사 A 씨는 자기가 갖고 있던 서울의 10억 원짜리 상가 건물을 고등학생인 자녀 명의로 돌렸다. 이 미성년 자녀는 현금으로 2억5000만 원이나 되는 증여세까지 냈다. 이후 자녀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매달 임대료로 수백만 원을 받았다. 겉보기에 탈세가 아니지만 국세청은 수입이 없는 고등학생이 억대의 세금을 낸 것을 수상히 여겨 조사했고, 그 결과 치과의사인 아버지가 증여세를 대신 낸 불법 증여임을 밝혀냈다.

국세청은 이처럼 만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부동산, 고액 예금, 주식 등을 증여하고 세금을 내지 않거나 대납해 준 혐의가 있는 204명을 선정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고액 자산가가 미성년자에게 증여한 재산 총액이 1조 원을 넘는 등 ‘금수저’ 자녀들에게 돈이 대거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富)의 무상 이전’이 많다고 본 것이다. 미성년자에게 재산을 주려면 증여액에 세금까지 포함해서 넘겨야 하지만 불법 증여자들은 증여와 별개로 세금을 대신 내주고 자녀들이 낸 것처럼 꾸몄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성년자 증여 건수는 7861건으로 금액 기준 1조279억 원에 이른다. 2016년과 비교해 건수는 35%, 금액은 50% 급증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 결과 아파트 2채를 4억 원에 산 4세 유치원생과 아파트 2채를 11억 원에 매입한 12세 초등학생 등이 당국에 포착됐다. 34억 원 규모의 건물을 산 뒤 임대소득을 줄여 신고한 초등학생도 있었다. 돈을 벌기 힘든 나이에 부동산을 매입한 비상식적인 사례들이다.

주택이나 상가건물의 증여가 늘어난 것은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자녀에게 부동산을 넘겨 세금을 줄이려는 고액 자산가가 많아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주택 증여 건수는 9만2178건으로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2006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증여 건수(8만9312건)보다 3000건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미성년자의 증여 사례에 대해 앞으로도 매번 전수 조사를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이 대물림되는지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400채 900억 부동산 강사 탈세혐의도 조사 ▼

국세청은 주택, 주식, 예금을 가진 미성년자들을 3개월간 전수 분석해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재산을 구입했거나 세금을 낸 것으로 파악한 204명을 조사 대상으로 꼽았다.

이 중에는 부동산 외에 예금이나 주식을 편법 증여받은 경우도 포함됐다. 고등학생이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로부터 7억 원을 받아 회사채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증여 사실 자체를 숨기려 한 사례와 할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지분을 미성년자인 손주에게 넘기며 증여세를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한 사례도 있었다.

국세청은 이와 별도로 최근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부추긴 것으로 지목되는 부동산 강사와 컨설턴트 21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세무당국이 부동산 강사 개인을 조사한 적은 있지만 부동산 관련 직업군을 특정해 세무조사를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 강사와 컨설턴트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주부, 학생 등 수강생을 모은 뒤 투자 지역을 찍어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다. 국세청은 이들이 고액의 강의료를 받고도 수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직접 부동산 거래에 참여해 불법 전매, 다운 계약 등으로 탈세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 900억 원에 이르는 아파트와 오피스텔 400여 채를 갖고 있지만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부동산 강사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세청은 부동산 강사가 추천한 투자 지역의 거래 실태를 점검해 탈세 혐의를 파악할 계획이다. 세무조사를 통해 이들이 대규모로 해당 지역에서 부동산 투자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되면 소문으로 돌던 시세 조종 의혹이 밝혀질 수 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주애진 기자
#편법증여#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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