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권방어, 지배구조 선진화해야… 새로운 규제는 없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일 03시 00분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은 11월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시민사회, 노동조합 간 관계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출신이지만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은 11월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시민사회, 노동조합 간 관계 재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출신이지만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문재인 정부와 시민단체 및 노동단체 간 갈등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양측이 서로 관계를 재설정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시민사회가 노무현 정부 때의 실패를 곱씹어 보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인내해준 덕분에 양측의 갈등이 정부 출범 1년 6개월이 지나 현실화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화물연대 파업, 이라크 파병 등으로 출범 6개월도 안 돼 시민사회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을 추진하는 핵심 브레인 중 한 명이다. ‘김&장’ 교체 와중에도 거취에 대한 논란이 없었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뢰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설명했다.

―경제가 안 좋다는 지적이 많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조화롭게 되고 있나.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유사한 위기 상황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이 어렵고, 특히 취약계층이 어려운 건 분명해 보인다. 정책 당국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과거 우리는 10년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새로운 성장 산업과 새로운 해외 시장이 출현한 덕분에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5년 후, 10년 후 국민을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이나 시장이 안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 규제를 풀면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소득주도성장에만 매달리는 느낌이다.

“전 세계 어느 지도자에게 정책 방향이 뭐냐고 물어봐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개의 축을 말할 것이다. 지금의 정책 방향은 틀리지 않다. 다만 3축이 함께 가면서도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경제 정책이라는 게 제한된 정책 자원을 가지고 정책 목표를 잘 조율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현 정부는 급하게 출범하는 바람에 그런 측면의 어려움이 있었다. 2기 경제팀은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 의도와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각 정책의 속도와 강도를 보완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모두 함께 잘 살자는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단이 문제인데 이익공유제, 카드 수수료 인하 개편 등을 보면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것 같다. 결국 있는 사람, 특히 대기업으로부터 빼앗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 주라는 취지 아닌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할 일과 시장에 맡길 일을 구분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경제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 대통령께도 이 부분을 말씀드린 적이 있고 잊지 않으셨을 것이다. 경제 정책이 누군가에게 뺏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거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성과공유제나 카드 수수료도 그런 취지가 아닌데 잘 전달이 안 되고 비판이 과장된 것 같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 최근 정부와 시민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보나.

“과거에도 주장해 왔듯 정부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시민사회, 노조와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러 이해당사자 의견을 듣고 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대통령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이 같은 방향에서 만들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빅뱅식 재벌 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현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했지만 각 영역별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제기하는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다. 사실 시민사회와 노조도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 대해 인내해준 게 사실이다. 1년여 동안 총파업 한 번 없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문재인 정부를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정책 조정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이제 양측의 밀월 관계가 끝났다고 본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배구조 개선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고 투자 여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 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경영에 개입하려는 것과 그에 따른 리스크는 자연스러운 기업 활동이다. 경영권 위협의 주요 대상은 주로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이다. 우리 사회가 30대 재벌을 위해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는 게 좋은 일인지 의문이다. 경영권 방어 문제는 지배구조를 선진화해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

―새로 구상하는 대기업 정책이 있나

“임기 내 더 추가되는 건 없다. 대신 내년부터는 제재 이후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를 받은 기업이 그 일감을 어디로 보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강도 높게 추진할 내년도 중점 사항이다.”

―삼성이 여러 사정기관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백혈병 문제 해결 등 삼성이 변화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조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발표했다면 우리 사회 전체와 투자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줬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이다.”

―재벌 개혁에만 매달리고 대형 담합,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적발 등 공정위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있다.

“여론의 관심이 재벌 개혁에 있어서 생긴 착시효과다. 공정위는 곧 보험시장(코리안리), 제약시장, 애플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을 결론낸다. 경쟁법 영역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인터뷰=신치영 경제부장 / 정리=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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