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사장 제일모직 시절부터 이어온 패션사업서 16년 만에 손 떼
‘과감한 신사업’ 오너경영 장점 사라질까, “후임 대표 안 정해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45)이 16년 만에 패션사업에서 물러나면서 옛 제일모직부터 이어온 삼성의 패션사업 방향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인사는 이 전 사장의 사장 취임 4년 만이자 단독 사장으로 선임된 지 3년 만이다.
10일 재계 및 패션 업계 등에 따르면 이서현 전 사장이 복지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는 발표에서 ‘전(前) 삼성물산 패션부분 사장’으로 언급되면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경영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측은 ‘아직 삼성물산 차원서 인사가 나거나 공식적인 언급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향후 그룹인사를 기다려봐야 한다. 신임 사장 인사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어서 삼성물산 내부에서도 다소 동요가 있다는 후문이다. 삼성그룹이 3세 경영체제로 들어가면서 신라호텔은 이부진 사장이,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제일기획은 이서현 신임이사장의 몫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패션 업계는 오랜 기간 삼성의 패션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이 전 사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삼성물산 패션사업의 향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전 사장이 패션부문에서 ‘오너경영’의 장점을 발휘해 과감한 추진력을 보여온 만큼 앞으로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내부에서도 앞으로는 예전만큼 강한 추진력으로 사업을 펼치기는 어려워지지 않겠냐고 내다보고 있다.
1973년생인 이 이사장은 서울예술고를 졸업한 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 이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하며 삼성의 패션 사업에 발을 들였다.
이후 2005년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과 2009년 제일모직 패션사업총괄 부사장을 거쳐 2014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섰다. 2015년부터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이후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이끌어오는 등 오랜 기간 삼성의 패션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이 기간 패션 시장은 온라인·모바일로 주 소비채널이 이동하고 수입명품 시장 규모가 커지는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면서 기성복을 중심으로 한 국내 전통적 패션브랜드가 높은 성과를 내기 갈수록 힘들어지는 양상으로 흘러왔다. 이 전 사장이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지만, 이도 빠르게 변화하고 경쟁이 치열한 패션 시장에서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기 쉽지 않은 이어져왔다.
최근에는 빈폴아웃도어를 빈폴스포츠로 리뉴얼하고 대세 걸그룹인 ‘트와이스’를 모델로 발탁해 홍보하고 있다. 또 스웨덴 토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그라니트’(GRANIT)를 국내에 론칭하며 혼퍼니싱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힘쓰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이 같이 어려운 업계 상황 속에서 분전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2016년 매출 1조8430억원에 45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가 지난해엔 매출 1조7495억원과 영업이익 326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그러나 올해 3분기까지 누적으로 매출 1조2649억원에 12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다시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패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기적인 불황과 의복의 전체적인 질이 점점 향상되면서 ‘입는 것’부터 우선적으로 줄이는 소비 경향이 지속된 중에도 유니클로 등 SPA(유통제조 일괄) 브랜드가 빠르게 급성장했다”며 “기존 패션 브랜드들의 성장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삼성이 어떤 식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시장에 대처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복지재단은 6일 오전 임시 이사회를 열고 이서현 삼성물산 전 사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이사장의 임기는 4년으로 2019년 1월 1일 취임할 예정이다. 전임 이사장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서현 이사장 본인이 사업보다는 사회공헌사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아동복지에 관심이 컸기에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공헌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후문이다.
이 이사장은 리움미술관의 발전을 위한 주요 사항을 논의할 ‘운영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도 위촉됐다. 이 이사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삼성복지재단을 꾸려나가며 사회공헌사업에만 집중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예원학교-서울예고-뉴욕 파슨즈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이 이사장(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의 학력과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의 경영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영감과 폭넓은 해외인맥을 미술관 운영에도 투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복지재단 측은 “이서현 이사장이 삼성복지재단의 설립 취지를 계승하고 사회공헌 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적임자로 평소 소외계층 청소년과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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