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가 ‘꿀잠’ 팔기에 나섰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늘면서 수면산업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 시장이 커지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올해 서울 강동구 천호점에 수면 전문 체험매장 ‘슬립랩’을 마련했다. 방문한 소비자들이 자신의 수면 자세와 키, 몸무게 등 문진표를 작성한 후 체압분포측정기·척추형상측정기 등 과학적인 장비를 사용해 수면 습관을 분석하면 그에 따라 적합한 매트리스를 추천해준다. 소비자가 매장에 비치된 침대에서 잠을 청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 수면 제품을 장시간 체험해볼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주말 평균 50~70명이 매장을 방문하고 이 중 3분의 1이 제품을 구매한다”며 “일반 침구 매장의 방문 고객 중 구매 비율이 1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체험이 매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은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수면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6.6%가 ‘수면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답했다. 수면 장애를 겪는 사람도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년 38만여 명이었던 수면장애 진료 인원은 지난해 51만여 명으로 늘었다.
건강관리 업체 바디프랜드도 안마의자에 ‘수면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마사지를 통해 교감신경을 억제하고 긴장된 몸을 이완시켜 숙면을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정재훈 바디프랜드 마케팅팀장은 “최근 한 대학병원과 임상실험을 진행한 결과 수면 프로그램이 수면 도달 시간을 줄이고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은 늘리게 했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질 높은 잠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면서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업계는 객실의 콘셉트를 숙면으로 꾸미기도 했다. 롯데시티호텔구로는 10월 ‘숙면 특화 룸’을 마련했다. 객실에 산소 발생기와 목과 허리 부위에 베고 누워 마사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능성 베개를 객실에 비치했다. 침구도 습도를 자체 조절할 수 있는 소재로 프리미엄 기능성 제품을 넣었다. 롯데호텔부산은 숙면을 주제로 한 ‘굿나잇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객실 내 침대 매트리스 상단에 수면 패턴 분석용 센서 패드가 설치돼 고객이 자신의 수면 패턴을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일반 객실에 비해 예약률이 높고 고객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숙면을 취하게 해준다는 내의나 기능성 침구, 가습기 등 숙면 유도 가전제품도 잠 못 드는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피스타운 근처에 마련돼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틈타 쪽잠을 잘 수 있도록 한 수면카페도 호황이다. CGV 등 영화관에서도 침대를 마련해 두고 낮잠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시에스타’를 운영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 규모는 2조 원 대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해당 시장이 2016년 이미 20조 원을 넘었고 일본에서는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휴식에 대한 현대인의 욕구가 강해지면서 잠도 하나의 상품이 됐다”며 “자신의 건강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 심리에 따라 한국에서도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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