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 관련 기관에 근무하던 시절, 갑자기 한두 주 만에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했던 적이 있다. 급박하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생산활동인구(15∼64세) 감소로 2016년부터 주택시장이 붕괴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경험을 한 일본의 부동산 전문가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첫 반응은 “어이없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 덕분에 강력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산활동인구 감소로 자국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아해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생산활동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했지만 주택시장은 그보다 약 5년 먼저 붕괴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주택가격 고점은 1990년이지만 생산활동인구는 1996년에야 직전 연도에 비해 0.1% 감소했다.
은퇴 연령에 접어든 사람들이 보유하던 부동산을 처분하고 확정수익이 보장되는 상품, 예를 들어 은행 예금 등으로 대거 이동하면 이는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프랑코 모딜리아니(1918∼2003)가 주장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소비지출과 투자는 당장의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미래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이뤄진다. 예를 들어 25∼64세 때는 저축하고 자산을 구입하고, 65세 이후에는 모아둔 저축과 자산을 이용해 노후를 설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 무엇보다 이자율이 중요하다. 은행 금리가 연 10%를 넘던 과거에는 은퇴하는 시점에 보유하던 부동산을 처분해서 은행 예금으로 옮겨 타는 것만으로 노후를 설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실질금리 1%대 저금리 환경에서 이런 결정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 복지 여건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젊어서부터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은퇴한 뒤 보유하던 부동산을 팔 이유가 있을까. 최근 북유럽 등 복지국가의 부동산 가격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도 불구하고 급등한 사실이 이 관측을 뒷받침한다.
셋째, 임대시장의 구조 변화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전에는 전세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지만 최근 그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2006년 전월세 거주자 중 전세 비중이 62%에 이르렀지만 2016년에는 46%까지 내려왔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미칠 영향을 이 글에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주거비 부담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주택연금이라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노후 복지계획이 잘 수립되며 주거비 부담이 높아질수록 은퇴 가구의 주택 매도 압력이 약화될 수 있다. 즉, 생산활동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당장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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