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국채 발행 관련 청와대 외압 의혹을 주장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당시 관련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기재부와 진실공방에 날을 세웠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적자국채 발행을 지시한 인물로 김동연 전 부총리를 지목하고, 청와대 외압 당사자로 차영환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현 국무조정실 2차관)의 실명을 처음으로 거론해 파장을 낳고 있다.
하지만 기존 주장 외 새로운 폭로는 없었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서 기재부가 해명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文정부, 박근혜 정부 채무비율 높이기 시도했다?
신 전 사무관이 이번에 폭로한 내용 중 가장 세간의 이목을 끈 부분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기재부가 수천억원의 이자부담 발생에도 불구하고 발행하지 않아도 될 적자성 국고채(적자국채)를 발행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일부러 높게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신 전 사무관은 이같은 결정이 박근혜 정부 임기년도에 들어가는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신 전 사무관은 그 증거로 1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2017년 11월 당시 ‘적자국채 추가발행’과 관련해 김동연 전 부총리 지시를 받은 후 기재부 고위관계자와 나눈 SNS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대화에서 국채발행업무를 총괄했던 차관보(조규홍 재정관리관)는 “핵심은 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화는 당초 적자국채 추가발행을 하지 않기로 부총리에게 보고했다가 차관보가 크게 질책을 받은 뒤 국고국 관계자들간 국채발행을 위한 재원 마련방안을 논의하면서 나눈 대화다.
이를 두고 신 전 사무관은 김동연 전 부총리가 ‘정무적 판단’으로 국채발행을 지시했으며, 국채발행을 통해 의도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라는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정무적 판단의 배경에는 이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게 보여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더라도 부담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게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다.
◇“증거는 없다…비망록 내용 모른다”
하지만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 문재인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국가채무비율이 올라갈 것을 대비해 정권 초반에 국가채무비율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기재부의 해명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재부는 “설사 추가 발행을 통해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높인다 해도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첫해 국가채무비율이 되는 것이어서 (국채를 발행할)그럴 이유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이 나오고 기재부가 반박하는 진실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 전 사무관이 김동연 전 부총리가 정무적 판단으로 국가채무비율을 올리라고 지시한 증거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 전 사무관은 이같은 해석에 일부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날 ‘채무비율 조정에 대해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 첫해로 잡힌다고 해명했는데 누구 말이 맞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두개 다 동시다. 제가 짧게 올린 카톡에도 있는데 결국은 문재인 정부 첫 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GDP 대비 채무비율이 오르면 정권에 안좋다. 마찬가지다”며 “그건 해명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신 전 사무관의 발언은 앞서 자신이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이 기재부를 그만 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국채발행 이유가 향후 재정확보 차원과 채무비율 조정이라는)두 가지 모두 납득이 가지 않았다”며 “그렇게 될 때 비교대상이 될 기준점이 박근혜 정권의 교체기인 2017년이 될 것이다. 미래를 고려해 본다면 2017년의 GDP 대비 채무비율을 낮춰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외압과 관련해서도 차 전 비서관의 이름이 거론됐으나 결과적으로 국채가 추가로 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기재부 해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재부는 “만약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더라면 궁극적으로 적자국채 추가발행으로 연결됐을 것이나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은 없었다”며 “국채발행 취소는 청와대와 협의해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오히려 청와대 외압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국채발행을 막았다는 반증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신 전 사무관은 또 비망록이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망록 관련해서는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인지 모른다”며 “다만 저희 부서 실무자들도 다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예정됐던 적자국채 1조원 규모의 바이백(국채환매) 취소로 시장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서는 당시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책임 논란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신 전 사무관은 “제가 공무원인 게 부끄럽다고 느꼈던 게 바이백이 하루 전에 취소됐던 것”이라며 “그날 실제로 금리가 치솟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의사결정과정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노한 것이고 그 분노에 기반한 (폭로)행위였는데 기재부에서는 왜 취소했는지 말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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