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미역밖에 없던 작은 어촌마을이…롯데몰 입점 이후 상전벽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6일 17시 49분




“멸치 미역밖에 없는 작은 어촌마을이었지. 멀리 갈 것도 없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동용궁사 아니면 기장으로 가자는 손님이 아예 없었다니까.”

지난달 21일 부산역에서 롯데몰 동부산점이 있는 기장읍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60대 기사는 기장읍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용궁사 빼면 그 촌마을에 갈 일이 뭐가 있겠냐”면서 “롯데몰이 들어오면서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요즘은 시내에서 기장까지 가는 쇼핑객들을 많이 태운다”고 말했다.

차로 40분가량을 달려 기장읍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고층빌딩과 대형선박이 곳곳에 보였던 부산시내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고즈넉한 모습이었다. 항구 주변에는 작은 고깃배와 오래된 집들이 보였다. 토박이 택시기사 말대로 기장의 첫인상은 평범한 어촌마을이었다.



● 롯데몰 입점 이후 상전벽해

차를 타고 5분 남짓 더 이동해 ‘오시리아 관광단지’ 주변에 이르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롯데아울렛, 롯데마트, 롯데시네마 등 13만2231㎡(옛 4만 평) 규모의 대규모 유통시설이 눈에 띄었고 인근 부지에는 가구 전문점 이케아 동부산점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케아코리아는 2020년 상반기를 목표로 지난달 공사를 시작했다.

롯데몰 전망대에 올라가자 주변 풍경이 좀 더 또렷하게 들어왔다. 세계적인 호텔인 힐튼호텔과 아난티콘도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지난해 개장한 힐튼호텔 부지에는 숙박시설 뿐 아니라 대규모 수영장, 고급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이 함께 들어섰다.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의 숙박이나 공식행사도 이곳에서 다수 진행되고 있다. 대형 컨벤션센터와 고급호텔이 밀집한 부산시내 외에 외곽인 동부산까지 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2012년 11월 롯데가 동부산에 아울렛 출점을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앞서 부산시는 2006년부터 ‘동부산 관광단지 개발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해운대, 광안리 등 부산 유명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부산에 특화된 관광단지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이었다. 문제는 기업 유치였다. 해동용궁사와 작은 어촌마을이 전부인 허허벌판에 선뜻 투자를 결심하는 기업은 없었다.


사업 추진 후 5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던 개발계획은 롯데가 뛰어들면서 180도 달라졌다. 4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에 아웃렛, 마트, 영화관 등 통 큰 투자를 결정한 롯데는 2년여의 공사 끝에 2014년 롯데몰을 열었다. 동네사람 뿐이던 기장읍에 개장 첫 날에만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김재범 롯데몰 동부산점장은 “개점 초기 매주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쏟아졌다. 부산 뿐 아니라 울산, 광주 등 타 지역 고객들도 대거 몰려왔다”고 말했다. 태국, 대만,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까지 롯데몰을 찾으면서 동부산몰의 매출은 롯데 전체 아웃렛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기장읍에서 롯데몰이 자리를 잡으면서 동부산 개발계획에 속도가 붙었다. 아난티, 힐튼호텔 등 최고급 숙박시설이 들어섰고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도 입점 계약서에 사인했다. 지지부진하던 교통 인프라 조성 공사도 롯데몰 주변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조기 착공됐다. 부산시 관계자는 “롯데몰이 들어선 후 개발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앞으로도 테마파크, 문화예술단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롯데몰에는 동부산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한 다른 지자체 공무원들이 여럿 있었다.


● 지역 채용·지방 세수도 증가

기장읍에서 학창시절을 모두 보낸 김소라 씨(27)는 2015년 롯데몰 동부산점에 취직했다. 나고 자란 곳에서 일하는 김 씨는 입사 첫 날을 ‘동창회’로 표현했다. 김 씨는 “롯데에서 지역 출신들을 많이 채용해서 매장에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면서 “마치 초·중·고 동창회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는 “롯데몰이 들어서기 전에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아르바이트가 대부분이었다”면서 “대형 쇼핑몰이 생기면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 롯데몰이 들어선 이후 지역 일자리와 세수가 크게 증가했다. 기장군에 따르면 지방세 징수 실적은 롯데몰 개장 초기인 2014년 813억 원에서 2015년 1032억 원, 2017년 1341억 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지역 일자리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롯데에 따르면 전체 2200명의 직원 가운데 약 2000명은 기장군 인근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외 타 지역 관광객도 급증했다. 롯데에 따르면 롯데몰 동부산점의 올 한해 방문객은 500만 명가량으로 부산 외 지역에서 유입된 고객이 전체의 43.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인근 해변을 따라 카페나 숙박시설도 눈에 띄게 늘었다. 대부분 최근에 지은 신식 건물들로 스타벅스, 엔제리너스커피 등 대형 커피전문점이 곳곳에 보였다. 인근 송정호텔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페 등 상업시설이 전혀 없었다. 저녁이 되면 침묵이 흐르는 동네였다”면서 “롯데몰이 들어선 후 모텔 등 숙박시설과 카페가 각각 30, 40개 이상 들어섰다”고 말했다.

동부산에는 2021년까지 테마파크와 아쿠아월드도 들어서기로 해 또 한번의 상전벽해가 예상된다.

▼ 부여 방문객 620만 명…6년새 급증 ▼

충남 부여군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 방문객 수는 약 6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2012년 400만 명을 웃돌았던 방문자 수가 몇 년 만에 급증한 이유는 뭘까. 부여군이 핫플레이스가 된 데에는 롯데의 영향이 컸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가 이 일대에 105만7851㎡(옛 32만평) 규모의 아웃렛, 리조트, 골프장 등을 조성하면서부터 관광객 수는 매년 증가라고 있다. 롯데아울렛 부여점이 문을 연 2013년 이후 부여군 방문객 수는 2014년 5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6년에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롯데아울렛 방문객 수만 지난해 기준 연간 330만 명에 이른다.

방문객 수가 늘면서 지역상권 활성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방문하는 손님”이라면서 “쇼핑을 한 후 지역 식당이나 특산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지역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도 지역 상권을 살린 대표 사례로 꼽힌다. 2014년 10월 오픈 이후 3년 만에 방문객 1억 명을 돌파한 롯데월드몰은 조성 당시 지역 상권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롯데카드 사용자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롯데월드몰을 방문한 고객의 24% 가량은 인근 상점에서 지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 러버덕 인형을 석촌호수에 띄우는 등 롯데월드몰에서 대형 이벤트를 하는 기간에는 주변 상권 매출이 20~3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방이동 먹자골목 등 새로운 상권도 생겨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기업이 들어오면 지역 상권이 죽는다는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지역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됐다”면서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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