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국내 최정상급 게임기업 넥슨의 모회사 NXC가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움은 컸다. 최근까지 ‘배틀라이트’ 등 신작을 성공적으로 배급한 넥슨이라 충격은 더 컸다.
사실 국내 게임업계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게임업계는 전성기를 맞았다. 많은 게이머가 각 게임사의 신작을 기다리고 열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외 대작들과 경쟁에서 밀리고, 계속되는 규제로 동력을 잃었다. 결국 일부 게임사는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을 그대로 벤치마킹해 우후죽순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가물에 콩 나듯 ‘배틀그라운드’ ‘로스트아크’ 같은 화제작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인기 IP(지식재산권)가 되기엔 화제성 등이 짧았다. 최근에는 게이머 사이에서 믿고 거르는 국산 게임의 줄임말인 ‘믿거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일각에서는 게임에 대한 나쁜 인식과 그에 따른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청소년의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와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 제한 등 국내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업계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 과연 한국 게임업계 쇠퇴의 책임은 어디에 있고, 부활할 방법은 없는 걸까.
게임 척화비 세운 중국에 한국은 발 동동
최근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큰 변수로 중국시장을 들 수 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시장이지만 한국산 게임의 진입이 어렵기 때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년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16년 국내 게임 수출액에서 중화권의 비중은 매출 기준 36.4%로 최대 규모다. 특히 타국에 비해 한국은 중국시장 진출에 유리했다.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크로스파이어’ 등 국내 게임이 진출해 크게 성공한 사례가 있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중국 게임업체들도 과거에는 한국 게임의 영향을 받은 유사 게임을 내놓았다.
하지만 중국에 게임을 유통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중국에서 게임을 출시하려면 게임 서비스 라이선스인 ‘판호’(유통허가권)를 받아야 한다(표1 참조). 게임 내에서 돈이 드는 재화(캐시 아이템)를 팔려면 중국 정부의 추가 허가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2017년 3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파문 이후 중국 정부의 판호를 받은 국내 게임은 단 한 건도 없다. 지난해 3월에는 판호를 담당하는 주무기관이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에서 중앙선전부로 변경되며 한국뿐 아니라 전체 수입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이 중단됐고, 12월에야 비로소 판호 발급이 재개됐다. 하지만 국내 게임은 아직 판호를 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게임산업 규제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 30일 청소년 근시 예방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 판호를 담당하는 중앙선전부를 비롯해 교육부,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체육총국, 재무부, 국가시장관리총감독국 등 8개 부서가 참여한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건 아니지만 우리의 셧다운제처럼 청소년의 게임시간을 제한하고, 새로 출시되는 게임 숫자와 중국시장에서 서비스되는 전체 게임 숫자를 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1위 게임·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업체 텐센트는 2017년 9월 자사 대표작 ‘왕자영요’(국내 서비스명 ‘펜타스톰’)에 실명제와 자체 셧다운제를 도입했다. 12세 이하는 하루에 1시간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텐센트는 서비스하는 모든 게임에 비슷한 자체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넥슨의 ‘던전앤파이터’처럼 텐센트를 통해 중국에 서비스되는 국내 게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게임 검열도 강화됐다. 중앙선전부는 지난해 12월 ‘온라인게임윤리위원회’를 설립했다. 게임 전문가와 정부 부문 연구원, 협회 등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온라인게임 콘텐츠를 사전 심의한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12월 이 위원회는 게임 20개를 심의해 9개를 승인하지 않았다. 나머지 11개도 윤리적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중국에서 서비스할 수 있다.
계속되는 규제에 중국 게임업계 사정도 좋지 않다. 텐센트는 지난해 2분기 실적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2분기 순이익은 177억 위안(약 2조91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줄어들었다. 실적 악화는 게임산업 때문이었다. 게임 매출액이 총 252억 위안(약 4조15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2.4% 감소했다. 실적 콘퍼런스 콜에 참석한 마화텅 텐센트 최고경영자(CEO)는 “감독(규제) 문제로 스마트폰 게임 인허가가 일시 중단됐다. 아직 (인허가를 받으려고) 대기하는 게임이 아주 많다”고 실적 악화의 이유를 밝혔다.
아무리 미워도 게임업계 중국 ‘못 잃어’
텐센트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2분기보다 24%가량 증가하며 실적을 회복했다. 하지만 게임산업은 여전히 부진했다. 3분기 매출액은 258억1300만 위안(약 4조2560억 원).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 그 대신 위챗 등 SNS와 온라인 광고 수입, 클라우드 서비스 매출, 전자결제서비스 등 신산업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올렸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게임 관할이 중앙선전부로 이관되면서 관련 규제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중국 정부가 게임산업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매해 좋은 실적을 보이던 넥슨이 회사를 팔겠다고 나선 것도 중국시장의 영향이 큰 듯하다. 넥슨의 지난해 3분기 실적 공개에 따르면 4분기 예상 매출액은 약 4777억~5204억 원, 영업이익은 666억~916억 원이다. 이를 그대로 지난해 1~3분기 매출과 합산하면 예상 매출액은 약 2조5600억 원, 영업이익은 1조100억 원 수준이다. 사상 최대 매출(2조2987억 원)과 영업이익(8856억 원)을 기록한 2017년보다 나은 실적을 낸 셈이다. 수치로만 따지면 회사를 팔 이유가 없어 보인다(표2 참조).
하지만 업계 1위에 빛나는 넥슨이지만 2010년대 이르러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다. 2016년 야심차게 내놓은 FPS(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2’는 당시 출시된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동일 장르 게임인 ‘오버워치’에 밀려 출시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5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초창기에는 과거 그라비티의 인기 게임 ‘라그나로크’와 유사한 모습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운영상의 미숙 등으로 국내 이용자가 급감했고 현재는 일본시장의 인기 덕분에 명맥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넥슨의 높은 실적은 대부분 중국시장에서 나왔다. 2005년 출시된 벨트스크롤 MMORPG ‘던전앤파이터’가 중국과 국내에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할 정도. 이 게임을 중국시장에 유통하는 텐센트는 연간 1조 원의 로열티를 넥슨에 내고 있다. ‘메이플스토리’도 국내보다 중국에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측 규제가 심해지니 넥슨을 비롯한 업계 전체의 불안감이 커진 것.
규제가 심해져도 업계는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게임시장 전문조사기관 뉴주(Newzoo)가 지난해 5월 내놓은 게임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게임시장 매출(총 1379억 달러·약 154조3790억 원) 중 52%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발생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379억 달러(약 42조4000억 원)로 1위를 차지했고, 미국이 304억 달러(약 34조 원)로 뒤를 이었다.
국내 게임업계도 새 시장을 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넷마블은 북미와 유럽 등지에 엔씨소프트의 유명 IP ‘블레이드&소울’의 배급을 준비하고 있다. 위메이드는 비행 MMORPG ‘이카루스’의 모바일 버전인 ‘이카루스M’을 일본과 대만에 출시한 뒤 태국, 북미, 유럽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컴투스는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낸 모바일 게임 ‘서머너즈워 : 천공의 아레나’를 유럽에 출시해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시장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하는 것이 더 쉽다. 장르와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국내 소비자와 비슷하다. 사실 국내시장보다 중국·일본시장을 노리고 게임을 출시하는 업체도 많다. 반면 미국시장은 각 소비자가 좋아하는 장르가 다 다르고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도 PC, 모바일 외 콘솔 등으로 다양해 진출이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게임 규제의 선두주자 한국
업계에서는 외부 문제보다 규제 등 국내 변수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의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다(Tip 참조).
업계는 셧다운제 시행과 동시에 헌법 소원을 제기했지만 2014년 4월 합헌 결정(합헌 7 대 위헌 2)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결정문을 통해 ‘게임제공 금지조항은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려는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이를 위해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인터넷 게임의 제공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규제가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게임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팀 등 해외 플랫폼을 이용해 게임하면 셧다운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국내 업체 보호는 못 할망정, 해외 업체에만 기회를 주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해당 규제 시행 이후 한국 게임산업의 성장률은 급전직하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2011년 게임시장 성장률은 18.5%로 높았다. 2011년 10월 해당 조치가 내려진 이후 성장률은 1%대로 뚝 떨어졌다. 이후 성장률은 대체로 하락세였다. 삼정KPMG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게임산업을 둘러싼 10대 변화 리포트’에 따르면 2012~2016년 연평균 성장률은 6.9%. 2017년에는 6.2%, 2018년에는 4.4%로 빠르게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적은 청소년의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업계 매출에 큰 타격을 주느냐는 의문도 있다. 업계에서는 직접적인 매출보다 게임 이용자가 줄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당시만 해도 MMORPG 등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이 업계의 대세를 이뤘다. 장르 특성상 이용자 간 상호작용도 게임의 큰 재미 요소인데, 자정이 넘으면 이용자가 급감하니 성장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외부에서도 셧다운제가 한국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5년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를 통해 셧다운제로 1조1600억 원의 내수시장이 위축됐다고 밝혔다.
물론 한국 외에 비슷한 방식의 청소년 게임 규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몇몇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게임개발국이 아니며, 수출입 수지를 위해 만든 규제이거나 실효가 없다는 이유로 금방 없앴다(표3 참조). 지금까지 규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 중국이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빠른 2011년 3월부터 게임시간 제한책을 내놓았다. 밤 10시~다음 날 오전 8시 온라인 게임이 제한된다. 하지만 베트남은 게임을 만들기보다 수입하는 국가라 자국시장 방어 정책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실효성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호찌민에서 대학에 다니는 베트남인 A(22)씨는 “밤 11시가 넘어도 불법영업하는 PC방이 많다”고 밝혔다. 중국도 곧 유사한 규제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처럼 게임시간 제한 규제를 둔 나라는 베트남, 중국 같은 사회주의국가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 국가는 게임업계 후발주자라 시간 제한 규제를 통해 해외 게임 선진국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먼저 게임 제한 규제를 시행하다 철회한 나라로는 그리스와 태국이 있다. 그리스 정부는 2000년 모든 종류의 게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 게임 금지는 위헌이라며 그리스 정부를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이 재판에서 그리스가 패소해 효력이 정지됐다. 태국은 2003년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청소년의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사용자 인증이 어렵고 성인 신분을 도용한 청소년의 이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해 2년 만에 해당 규제를 폐지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규제하지 않으면
해외에서도 실패한 셧다운제지만 한국에서 해당 규제가 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에 나쁜 인식을 가진 기성세대가 많기 때문. 고등학생 자녀를 둔 서울 양천구의 김모(47) 씨는 “게임산업 발전이 중요하다지만 당장 집에서 밤새 컴퓨터 앞에 있는 자녀를 보면 게임이라도 규제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각당 의원들도 게임업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피력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사행산업 사업자들은 전년도 순매출의 0.5%를 도박중독 예방 치유 부담금으로 낸다. 게임사도 게임중독 예방 치유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게임 제한을 모바일 게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여성가족부는 2년마다 셧다운제 적용 게임물 대상을 새로 지정한다. 2014년과 2016년에는 모바일 게임 규제 적용이 유예됐다. 현재 PC 게임에만 셧다운제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5월 심사에서는 유예가 어려울 수 있다. 여성가족부도 지난해 9월부터 다수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모바일 게임이 규제에 포함될 개연성은 열려 있다”고 밝혀왔다.
PC, 콘솔 게임시장을 합한 것보다 모바일 게임시장이 더 커졌으니 정부가 모바일시장까지 규제 범위를 넓히려 드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뉴주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게임시장 규모는 총 137억9000만 달러(약 15조4300억 원). 이 중 모바일 게임시장의 규모는 70억3000만 달러(약 7조8700억 원)로 전체 시장 규모의 51%에 달한다.
모바일 게임도 이용시간 제한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장애(Game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을 공개했다. 게임장애는 도박중독과 함께 ‘중독성 행동장애’의 하위 분류에 등재됐다. 개정판은 5월에 열릴 세계보건총회에서 논의를 거친다. 여기서 등재가 확정되면 2022년 1월부터 국제적으로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받게 된다. 국내에는 ICD-11 적용이 2025년까지 보류된다. 하지만 게임중독은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최종적으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보는 것으로 확정되면 이를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물론 WHO가 게임중독을 국제질병분류로 놓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학계의 반발이 거세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주관한 ‘2018 불법 온라인게임물 사후관리 강화 포럼’에서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려는 이들은 ‘중독성’과 ‘폭력성’ ‘사행성’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 근거들은 학계에서도 논리가 부족해 중독물질의 근거로 보지 않는다. 정신의학회에서도 증상에 대한 통계적 근거가 부족해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용시간 조치 외에도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성인은 월 50만 원, 청소년은 월 8만 원만 온라인 게임 내 결제 가능) 등 게임 관련 규제는 많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게임을 일종의 죄악으로 보는 편견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산업은 국내 개발 콘텐츠 수출액의 60%를 상회할 정도로 큰 시장이지만, 여전히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 이 때문에 계속 규제 대상이 돼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나 시장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게임의 모험은 멈췄다
국내 게임업계가 고사하는 이유에는 규제나 외부 원인도 있지만, 업계 내부의 문제도 좌시할 수 없다. 실제로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게임은 대부분 모바일 게임이다. 물론 모바일 게임시장이 커지는 추세에서 PC나 콘솔보다 모바일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낸 게임 목록을 보면 한국 게임시장은 과거 영광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1월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 게임 매출 상위 100개 콘텐츠 중 국내업체의 게임은 대부분 과거 히트했던 PC 온라인 게임의 속편이다. 1위 ‘리니지M’을 필두로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2위), ‘검은사막 모바일’(3위), ‘리니지2 레볼루션’(4위), ‘뮤오리진’(5위)은 모두 PC 게임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특히 1위인 ‘리니지M’은 PC판 리니지를 모바일에 구현한 게임이다. 게다가 ‘검은사막 모바일’을 제외한 4개 게임의 원작인 ‘리니지’ ‘리니지2’ ‘뮤오리진’은 출시한 지 15년이 넘은 온라인 고전 게임이다. ‘뮤오리진’은 한국 게임이 원작이지만 개발은 중국 게임사가 맡은 중국 게임이다.
PC 게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PC방 통계분석업체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1월 8일 기준 PC방 점유율 상위 10개 게임 중 국내 게임사가 배급하는 게임은 7개(표4 참조). 이 중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는 출시 10년이 넘었다. 3위를 기록한 ‘피파온라인4’도 2006년 출시한 피파온라인의 후속작이다. 2위와 5위를 기록한 ‘배틀그라운드’와 ‘로스트아크’를 제외하면 국내산 신작은 없다. ‘배틀그라운드’는 브렌든 그린이라는 아일랜드 개발자가 제작했던 게임을 국내 업체인 블루홀이 함께 발전시킨 게임이다. 순수 국내 개발진이 이끌어낸 히트작은 ‘로스트아크’뿐인 것. 그나마도 현재 오픈베타 서비스 중이라 정식 서비스까지 이 열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게임 하나가 흥행에 성공하면 10년을 가는 만큼 업계의 가장 큰 숙제는 새로운 IP 개발이다. 문제는 그 노력이 모바일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모바일로 IP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클래시 오브 클랜’과 ‘클래시 로얄’을 성공시킨 슈퍼셀은 최근 발표한 신작 ‘브롤스타즈’도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7위에 안착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앵그리버드’를 개발한 로비오엔터테인먼트는 게임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나, 게임에 등장한 캐릭터를 이용한 영화, 캐릭터 상품 등으로 여전히 선전 중이다. 국내에서도 넷마블의 ‘세븐나이츠’는 2016년에만 3500억 원을 벌어들이는 등 그 나름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국내 게임사의 새로운 모바일 IP 개발 시도는 대부분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넥슨이 200억여 원을 들여 개발한 ‘듀랑고’는 ‘2018 대한민국 게임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개발력을 인정받았다. MBC에서 동명의 예능프로그램까지 방영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넷마블도 ‘아이언 쓰론’ ‘팬텀게이트’ 등을 내놓았지만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상위 100위 게임에 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올해에도 국내 업체의 모바일 신작은 기존 게임의 속편 혹은 모바일화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 연’ ‘크레이지아케이드 BnB M’ ‘마비노기 모바일’ ‘테일즈위버M’ 등 자사에서 좋은 성과를 냈던 PC 게임을 모바일로 이식해 내놓겠다고 밝혔다.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도 ‘세븐나이츠2’ ‘리니지2M’ 등 기존 IP 활용 게임을 내놓을 예정이다.
고전 게임만 계속해서 돌아오니 게이머는 할 게임이 없다며 해외 개발사의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는 출시 이후 8년째 PC방 점유율 1~3위권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블리자드의 ‘오버워치’도 지속적으로 높은 점유율(4위)을 유지하고 있다. 캡콤의 ‘몬스터 헌터 : 월드’는 점유율 2%에 불과한 국내 콘솔시장에서 1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눈앞의 이익만 챙기니 모험은 사라졌다
실패가 계속되니 업계에서도 신작 IP 개발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업체가 아니라면 외부 투자를 받아 게임을 제작하게 되는데, 투자자에게 단기간의 수익을 보장하려면 신작으로 모험을 걸기보다 이미 성공한 게임을 조금 고치는 식으로 출시할 수밖에 없다. 게이머들의 비판은 당연하나, 업계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계 매출의 절반가량은 상장사에서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집계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에는 게임업계 전체 매출의 52.8%가 상장사에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48.6%가 상장사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게임업계에서 상장사가 비상장사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게임업계 상장사 종사자 비율은 전체 업계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장사도 모험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니, 비상장사는 자연히 천편일률적인 게임만 만들게 되는 것.
주52시간 근무제도 게임업계의 발목을 잡는다. 개발 비용과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 그렇다고 근로자의 환경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주52시간 근무제로 당장 비는 손을 채용으로 메울 수 있는 게임업체는 드물다. 인력과 일의 양은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줄어드니 결국 일을 집에 가져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 비용이 늘지 않는다 해도 일의 능률이 떨어지니 개발 기간이 길어진다. 그렇잖아도 유행에 민감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서 큰 장애요소다. 근로시간을 제한하기보다 초과근무에 대한 급여를 확실히 지급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은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임산업의 침몰을 막으려면 유망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계는 정작 필요한 때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 사업이 많아 보이지만 대부분 교육,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에 편중돼 있다. 시장성 있는 게임을 기획해도 담당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뉴미디어 관련 여부 등 천편일률적 잣대를 들이대니 지원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민간 투자 유치도 쉽지 않다. 지난해 12월 13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인재캠퍼스에서 열린 ‘한국국제게임콘퍼런스’에서 박형택 케이앤투자파트너스 이사는 산업별 벤처캐피털 신규 투자 현황을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게임산업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2014년 1762억 원에서 2015년 1628억 원, 2016년 1427억 원, 2017년 1269억 원으로 계속 감소했다. 지난해 10월까지 투자액은 1060억 원에 불과하다. 박 이사는 게임산업이 투자시장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게임산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투자하는 ‘문화콘텐츠투자조합’에도 속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은 ‘디지털콘텐츠투자조합’에도 속한다. 여기에 창업을 지원하는 ‘재기지원 펀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펀드에도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어느 쪽에서도 게임이 메인 투자처가 아닌 셈”이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규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여러 규제 때문에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한국 게임산업이) 중국 등에 추월당했다. 규제를 풀어준다면 게임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셧다운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부모선택제’ 도입을 2년째 추진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다. 다른 관계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가 게임에 대한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
5년 전 대형게임업체에 개발자로 입사한 이모(32) 씨는 “정치권에서 매해 게임이 미래산업이라고 얘기하지만, 게임 자체를 병으로 보는 인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일부 친척 어르신은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빼앗는 직장은 그만두고 번듯한 직장을 찾으라는 충고한다”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Tip 셧다운제란?
2011년 11월부터 시행됐으며 청소년의 PC(컴퓨터) 게임 과몰입을 우려해 생겨났다. 청소년보호법 제26조에 의거해 만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인터넷, 온라인 게임 이용이 제한된다. 이를 위반해 청소년에게 게임 서비스를 제공한 업체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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