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건설 분야 중견기업인 SM그룹 우오현 회장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말할 기회를 달라”며 손을 번쩍 들었다. 해운업계를 대표해 마이크를 든 우 회장은 “해운업계가 현재 산소호흡기를 쓴 것처럼 어렵다”며 운을 뗐다. 그는 “선박을 취득할 때 대부분의 해운업체는 90%를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게 다 부채로 잡혀서 선박 한두 척만 구입해도 부채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고 토로했다.
보통 해운회사들은 1000원짜리 선박을 살 때 자기 돈은 100원만 넣고 나머지 900원은 대출을 받는다. 선박 한 척의 규모가 최소 200억 원에서 웬만하면 수천억 원으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이 900원은 모두 부채로 잡힌다. 영업을 위해 필수적인 선박을 구입하기만 하면 금융권과의 추가 거래가 어렵고 자칫 부실기업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주장이다.
우 회장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은 이런 회계 기준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선박을 인수하는 것을 감안하면 대출금 900원은 빚이 아니라 자산에 넣어야 맞다는 것. 이미 건설업계에서는 임대 후 분양주택에 대해 부채를 자산에 포함시키는 회계 기준 예외 조항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에 대해 “해양진흥공사 등이 금융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우 회장은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발주 환경을 좋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자금을 구하러 뛰어다니는 건 기업이 하겠다”고 말했다.
회계 문제는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영역이다. 국제 규정이 있고, 투자자들의 눈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해운업을 살리겠다며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기업들이 열심히 사업을 할수록 부채 비율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업계의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해운업의 부채 기준 변경은 국제 회계 기준에 위배되는지부터 차근차근 검토해 최대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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