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보험은 필수보험이에요. 특히 이번에 태아보험에 가입하시면 60만 원짜리 카시트를 드리고 아니면 20만 원 좀 넘는 현금을 드려요.”
1년 넘게 기다렸던 임신이 돼 기쁜 마음에 병원을 찾은 박모 씨 부부. 태아 사진을 들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태아보험 가입을 위한 상담을 받았다. 병원 로비 한쪽에 자리를 잡고 박 씨 부부를 맞이한 보험설계사는 “보험에 가입하면 고가의 카시트 또는 현금을 준다”며 가입을 권했다. 김 씨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천안에서 맞벌이 부부로 지내는 30대 오모 씨 역시 얼마 전 보험설계사로부터 10만 원 상당의 보험료 1회분을 대납받기로 하고 태아보험에 가입했다. 오 씨는 “태아보험이 필수보험이 되면서 이왕이면 더 큰 혜택을 주는 곳을 수소문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카시트를 주는 설계사들에 대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가입할 수 있는 태아보험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지나친 고가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저출산으로 가입자 줄자 보험사 간 경쟁 격화
태아보험은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각종 질병을 보장해주는 어린이 보험을 말한다. 일반 어린이 보험과 달리 신생아 때 발생할 수 있는 선천성 질환도 보장해주는 게 특징이다. 임신 중 태아의 질병이 확인되면 보험 가입이 어렵기 때문에 가입은 임신 22주 이내에만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태아보험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태아보험도 저출산의 영향을 피해가진 못했다.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자 태아보험 가입자와 전체 시장 규모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 것이다. 태아보험을 포함한 어린이 보험 가입 건수는 2015년 105만7000건에서 2017년 70만6000건으로 줄었다. 계약보험료도 같은 기간 749억 원에서 590억 원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보험사 간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태아보험은 한번 가입하면 통상 보장 기간이 사실상 평생 지속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태아보험을 통해 장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출생아 수가 급격히 줄면서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각 보험사가 사활을 걸고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과열 마케팅은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져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들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행법을 위반하는 고가의 상품을 지급하고 심지어 현금도 제공하고 있다. 보험업법상 판매자는 연간 보험료의 10분의 1 또는 3만 원을 초과하는 현금 및 상품을 지급할 수 없다.
이런 과도한 마케팅은 판매 비용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의 원인이 된다. 피해가 고스란히 가입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이미 이 같은 보험사들의 불법 영업 행태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문제 등의 이유로 본격적인 단속에 나서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속을 위해서는 제보가 있어야 하는데, 상품을 받은 가입자들이 이를 신고할 리 만무하고 인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