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의 종료를 선언했다. 연준이 비교적 신속하게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힌 데는 미국 경제가 둔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물가가 연준이 목표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리고 양적완화(QE)와 같이 막대한 규모로 돈을 풀었다. 당시 이렇게 풀린 돈은 향후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란 우려가 부각됐다. 하지만 최근 각국 경제가 차츰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어도 선진국 가운데 물가가 목표치(대부분 2.0%)를 크게 상회한 국가는 없다.
당초 우려보다 물가가 안정적인 동향을 유지하자 이른바 ‘인플레이션 경계론자들’은 임금에 주목했다. 물가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 임금이 뛰어야 한다며 임금 상승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의 시간당 임금상승률이 종전보다 높은 수준인 ‘전년 대비 3% 내외’까지 상승한 반면 물가는 안정적이다.
낮은 물가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글로벌 제조업을 장악한 중국 효과, 인구구조 고령화, 정보기술(IT) 발달에 따른 가격 정보의 고른 확산 등이다. 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앙은행들 역시 낮은 물가 상황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에 대한 경계가 낮아진 것은 미국에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1월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대한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6%로 내리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전망치도 1.7%에서 1.4%로 0.3%포인트나 낮췄다. 산술적으로 물가 때문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확률은 크게 낮아진 셈이다.
물가에 대한 통화당국의 인식 변화는 앞으로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물가를 주된 고려 대상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경기 여건에 따른 통화당국의 대응이 더 적극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물가에 대한 부담이 약화됐다는 것은 투자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물가가 상승할 경우 상대적으로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물가연동국채에 대한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물가 움직임과 연관성이 큰 원유에 대한 투자 역시 현 시점에서는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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