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하락장으로 암호화폐 거래량은 줄었는데 거래사이트는 늘어나는 ‘이상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규제안을 마련하지 않고 사실상 난립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암호화폐 거래량은 일부 거래사이트의 조작 등으로 정확한 파악이 어렵지만 지난 1년간 가격이 폭락하면서 ‘거래절벽’이라 표현될 정도로 감소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한 대형 거래사이트 관계자는 “현재 업계 전반적인 암호화폐 거래량은 정점이었던 2017년 연말대비 2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과거 호황을 누리던 거래사이트들이 최근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빗썸은 지난해 12월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 직원의 10%가량을 감원했다. 이어 국내 최초 거래사이트 코빗도 지난 1월 희망퇴직 수요조사를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거래절벽으로 감원에 나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신규 거래사이트가 우후죽순 설립되는 역설을 빚는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60~80곳 정도였던 국내 거래사이트는 지난해 11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현재 2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중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볼 수 있는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자율규제심사를 통과한 곳은 12곳뿐이다.
지난 10월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거래사이트 ‘코인이즈’가 NH농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계좌의 입금정지 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것이 거래사이트가 늘어난 계기로 손꼽힌다. 지난해 1월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실명제를 도입한 이래 은행권에서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사이트는 빗썸·업비트·코인원·코빗 등 4곳뿐이다. 나머지 거래사이트들은 법인계좌에 고객의 돈을 입금받아 관리하는 일명 ‘벌집계좌’ 방식을 써왔다.
지난해 8월 NH농협은행은 벌집계좌 사용을 이유로 거래중지를 통보했지만 법원은 코인이즈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에서 이를 사실상 벌집계좌 허용으로 받아들이면서 은행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신규 거래사이트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논란을 빚은 거래사이트에서 간판만 바꿔 다는 사례도 나온다. 오픈 이벤트를 진행 중인 신규 거래사이트 ‘카브리오빗’은 잦은 출금지연으로 이용자들이 항의 집회를 연 ‘올스타빗’과 대표가 동일인물인 것으로 확인돼 구설에 올랐다. 올스타빗 운영진 중 일부가 독립해 창업한 ‘빗키니’는 부정 운영 의혹을 받자 올스타빗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공지사항을 여러 차례 올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인가제, 등록제 등 규제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신규 거래사이트에서 쓰이는 벌집계좌는 거래자수가 많아질수록 자금이 뒤섞이는 등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자금세탁 위험성까지 있다. 현재 국회에는 암호화폐 관련 법률안 총 10개가 계류 중이나 논의는 답보상태다.
블록체인 전문 법무법인 디라이트의 조원희 대표변호사는 “해외 사례를 보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진행하는 게 거래사이트 규제와 불법행위 모니터링”이라며 “정부가 지금처럼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책임 방기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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