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인터넷을 활발히 이용했던 사람이라면 유튜브가 국내 온라인 영상 유통의 패권을 잡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당시에는 국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대세였다. 대표적인 것이 판도라TV. 유튜브보다 2년 앞선 2004년 서비스를 시작했다. 뒤이어 엠군, 엠엔캐스트 등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자리 잡았다. 당시 유튜브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이용자들이 쉽게 모이지 않았다. 국내 콘텐츠가 부족했기 때문.
하지만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됐다. 2010년에 들어서자 국내 온라인 영상 플랫폼은 대부분 힘을 잃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시장이 모바일로 재편되는 것에 국내 업체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광고도 많아졌다. 영상이 시작할 때는 물론, 중간에 15초 넘는 광고가 들어가자 이용자들의 불편이 커졌다. 유튜브에도 광고가 있었지만 빠르게 넘기는 것이 가능하자 서서히 유튜브로 망명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시작은 한국이었으나 서비스 질이 떨어져 글로벌화는커녕 국내시장도 지키지 못한 것.
국내 업체들에게도 속사정이 있다. 온라인 기업은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내야 한다. 특히 영상 등 높은 용량의 파일을 온라인상에 올려두고 공유하면 사용료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반면 해외 업체들은 망사용료 부담이 훨씬 적다. 망중립성 등을 이유로 사용료를 내지 않거나, 내더라도 한국 업체에 비해 훨씬 적게 낸다.
망사용료는 말 그대로 온라인 콘텐츠 기업들이 통신사가 깔아놓은 통신망을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이다. 단어만 들으면 전기나 수도요금처럼 일정한 요금체계가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망사용료를 크게 분류하면 △인터넷 연결을 위한 인터넷 전용회선 요금 △서버와 인프라를 임대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접속료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콘텐츠를 저장한 후 전송하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접속료 △다른 통신사의 회선을 이용하는 비용인 상호 접속료 등 네 가지다. 통신사마다 과금 방식이 다르고, 어떤 서비스를 하느냐에 따라 내는 액수도 천차만별이다.
“유튜브가 국내 기업이었다면 진작 망했다”
국내에서는 데이터 트래픽 발생량이 많을수록 금액이 커진다. 2016년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망사용료를 부담하는 상호접속 고시 개정이 발표됐다. 고시 개정 전에는 접속통신료를 용량 단위로 정산하는 일종의 정액제 방식이었지만, 개정 이후에는 트래픽 사용량을 기반으로 정산하는 종량제로 바뀌었다.
2016년 기준 네이버는 734억 원, 카카오는 300억 원가량의 망사용료를 냈다고 밝혔다. 2016년부터 영업이익이 각각 1조 원, 1000억 원에 달하는 정보기술(IT) 업계 1, 2위답게 많은 사용료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개인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는 매년 150억 원가량의 망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약 150억 원으로 카카오의 6분의 1, 네이버의 65분의 1에 불과하지만 망사용료는 카카오의 절반, 네이버의 5분의 1가량을 부담하고 있는 것. 아프리카TV는 글이나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소비되는 인터넷 포털과 달리, 영상이 주를 이루는 플랫폼이다. 종량제이기 때문에 그만큼 망사용료도 높다.
온라인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대형통신사가 직접 동영상 등 고용량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든다면 몰라도, 신생 기업이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콘텐츠 공유 플랫폼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기업은 통신사와 협상력이 커 망사용료를 조정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통신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9월 ‘한국적 망 중립성 정책 필요성에 대한 소고’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를 통해 안 위원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대기업은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들은 망사용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혁신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도 비싼 망사용료를 내고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면 국내 기업에 비해 훨씬 적은 돈을 내고 있다. 이용량만 따지면 유튜브와 검색을 담당하는 구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가장 많은 망사용료를 내야 한다. 국내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 앱 사용 시간 1위는 유튜브였다(335시간 사용). 2, 3위는 각각 카카오톡과 네이버로 199시간과 136시간이다. 스마트폰 소유자가 네이버보다 유튜브를 2.5배가량 더 이용하는 것.
글로벌업체는 국내서도 망사용료 제대로 내지 않아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 지불하는 망사용료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망사용료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본사 담당 직원과 논의해 망사용료를 공개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페이스북은 2016~2017년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망사용료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접속 경로를 변경해 임의로 속도를 지연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지난해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과징금 3억9600만 원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은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은 올해 KT에 이어 SK브로드밴드에도 캐시서버를 설치하며 망사용료를 일부 내게 됐다. 하지만 통신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한국의 망사용료를 생각하면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 지출하는 망사용료는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구글은 사실상 무료로 국내 망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 통신사들이 구글과 맺은 구글 글로벌 캐시(GGC) 서버 도입 계약 때문이다. GGC는 통신사의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서버로, 구글 서버 내용 가운데 국내 이용자들이 자주 찾는 콘텐츠를 저장해두는 역할을 한다. GGC 서버에 있는 콘텐츠는 국내 망, 이곳에 없는 콘텐츠는 해외 망을 사용해 가져오는 방식이다. 모바일 기반으로 온라인 콘텐츠 이용 환경이 재편되면서 구글과 유튜브 등의 인기가 높아지자 국내 통신사가 가진 해외 망만으로는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어 내려진 조치다. 구글은 GGC 설치 대가로 전기요금, 망사용료 등을 거의 부담하지 않게 됐다.
통신사 관계자는 “2011년 구글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국내 통신 3사는 망사용료 정산보다 안정적인 회선 구축에 집중했다. 엄청난 트래픽을 경쟁적으로 소화하겠다고 달려들었으니, 불공정한 계약 조건에도 어쩔 수 없이 GGC를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으니, 통신 3사도 구글로부터 망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구글의 눈치를 보고 있다. 구글은 망사용료를 내는 대신 국내 GGC 서버 운영을 중단하고 국내에서 발생한 트래픽을 전부 해외 망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망이 없으니 서비스 속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국내 중소업체들은 비교적 싼 구글 등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어려워진다.
국내 콘텐츠 기업도 통신사만큼이나 답답하다. 애초에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다르니 글로벌업체와 경쟁이 힘들다는 것.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기업은 망사용료 부담 때문에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를 못 하고 있는데 외국 기업은 망사용료 부담이 없으니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 같은) 불공정한 경쟁으로 동영상시장은 해외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유튜브, 트위치TV, 넷플릭스 등 해외 영상 및 개인방송 플랫폼은 초고화질(UHD) 영상을 지원한다. 하지만 국내 업체 가운데 공룡으로 불리는 네이버나 카카오는 아직 고화질(HD, 풀HD) 영상까지만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는 망중립성 없다
물론 다른 국가에서도 통신사들은 망사용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다만 한국에 비해 그 금액이 현저히 낮은 편. 영국 IT시장 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망사용료는 9달러/Mbps다. 한편 미국은 1달러/Mbps, 유럽은 2달러/Mbps. 글로벌 CDN 회사인 클라우드플레어는 자사 블로그를 통해 한국의 트래픽 요금이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15배 이상 비싸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른 국가의 망사용료가 싼 이유는 망중립성 논의 때문이다. 망중립성이란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데이터를 생산, 소비하는 소비자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망중립성을 지킨다면 한 달에 100GB(기가바이트)의 데이터 트래픽을 유발하는 기업이든, 매달 1GB의 데이터만 사용하는 개인 소비자든 인터넷 접속에 대한 요금만 지불하면 된다.
개인사업자인 ISP가 통신 사용량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일견 불합리해 보인다. 하지만 구글, 네이버 등 콘텐츠 기업도 할 말은 있다. 콘텐츠 기업이 없다면 통신망에 대한 수요도 없기 때문. 소비자는 검색,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서비스받고자 ISP에 돈을 내고 인터넷을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FCC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2010년 ‘열린 인터넷’ 정책을 발표했다. ISP들은 FCC를 연방법원에 제소했지만 5년간 법적 공방 끝에 2015년 2월 미국에 망중립성 원칙이 도입됐다. 유럽연합(EU)도 2016년 ‘오픈 인터넷’ 법규를 제정해 망중립성을 지키고 있다. 정부 방침이 확실하니 ISP도 콘텐츠 기업으로부터 망사용료를 비싸게 받을 수 없었다.
망중립성 없으면 온라인 유니콘도 없다
2017년 FCC가 망중립성 폐기 논의를 시작했다. ISP의 5G 통신망 등 설비 개선을 위해서는 콘텐츠 기업으로부터도 망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조치에 콘텐츠 기업은 물론, 소비자도 우려를 표한다. 망중립성 폐지에 반대하는 전국적 시위가 벌어졌으며, 1000여 개 소기업이 망중립성 철회를 반대했다. 이미 대형기업이 된 업체들은 오른 망사용료를 감당할 수 있고 이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에게는 망사용료 인상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온라인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ISP가 망 고도화에 따른 사용료 분담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려면, 세부적인 투자 계획과 필요 비용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 ISP는 콘텐츠 개발비를 부담하지 않으면서 공생관계인 콘텐츠 기업에만 망사용료 분담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EU는 당분간 망중립성 원칙을 지킬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안드루스 안시프 디지털 단일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2017년 10월 SNS를 통해 ‘(EU) 집행위는 유럽의 망중립성을 계속 보호할 것이다. 차별과 간섭 없이 개방된 인터넷에 접근할 권리가 EU 법규에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온라인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도 사라질 위험이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G 시대의 망 중립성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에르네스토 팰컨 미국 변호사는 “미국에서 구글, 페이스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터넷 개방성이 있다. 망중립성을 없애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즉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더 많은 돈을 내는 기업이 빨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갖게 돼 스타트업의 혁신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신업계는 당연히 반발에 나섰다. 통신 품질 등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는 것. 류웅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팀장은 “통신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 망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실질적으로 얻는 이익은 없다. 무선 매출은 2004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 5G 등 망 투자 비용이 크게 늘고 있으니 망중립성을 완화해 (ISP의) 투자 유인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망중립성 완화로 우려되는 통신사의 시장지배력 남용 등은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으로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 망중립성은 환경 변화에 따라 다르게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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