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간 거래(P2P) 금융 스타트업 렌딧은 2018년 말 ‘대출자가 아낀 이자’라는 특이한 성과를 발표했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이 저축은행, 카드론 같은 제2금융권 대신 렌딧을 통해 대출을 받음으로써 100억 원이 넘는 이자를 아꼈다는 것. 금리단층(은행과 비은행 간 대출금리 격차) 현상이 심각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고금리 대출자에게 연 10%대 중금리 대출로 갈아탈 기회를 제공한 덕택이었다.
기존 금융에선 보기 힘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일까. 창업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렌딧은 지금까지 약 24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P2P 금융기업 중 최대 규모다. 작은 스타트업이 기존 금융회사들이 외면한 중간 신용 대출자들을 포용하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67호(2월 15일자)가 혁신적인 금융시장 플랫폼을 구축한 렌딧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빅데이터 분석으로 개인별 맞춤형 금리 제공
2014년 말 미국에서 패션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김성준 렌딧 대표는 국내 저축은행에서 3000만 원을 대출받으려다 실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미국 P2P 금융회사 렌딩클럽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대출 신청 버튼을 클릭한 후 1분도 지나지 않아 연 7.8%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7.8%가 왜 미국에서는 가능한 걸까?”란 의문을 품은 김 대표는 그로부터 100일이 채 안 돼 패션 사업을 접고 2015년 3월 렌딧을 창업했다.
김 대표는 “P2P 금융은 개인은 물론이고 기관투자가, 기업 등 거래 주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 간 거래’라는 표현보다 ‘마켓플레이스 금융’이라는 번역이 더 적합하다”며 “렌딧은 마켓플레이스 금융 플랫폼을 통해 대출자에겐 기존 고금리 대출을 연 10%대 중금리로 갈아탈 기회를 제공하고, 투자자에겐 세전 평균 7% 안팎의 실수익률을 얻어갈 수 있게 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국내 금융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금리단층을 손봐야 한다. 렌딧은 자체 개발한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구체적으로 렌딧은 개인별로 차등화된 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 시점의 금융 정보뿐 아니라 최근 1년간 금융 정보의 변화 추이를 반영하는 CSS 모델을 설계했다. 카드 한도 소진율 등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트렌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등급 책정에 반영한다. 같은 신용등급이더라도 다른 금융회사와 렌딧에서 책정한 대출금리가 다른 이유다. 김 대표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개인별로 최적의 금리를 제공함으로써 신용대출 부문의 급격한 금리단층을 계단식으로 세분화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 ‘투명성’이 최우선…정보 공유 확대해 투자자 신뢰 확보
렌딧의 창업 초기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대출자뿐 아니라 투자자가 플랫폼을 믿고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신뢰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렌딧은 ‘투명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투자자가 궁금해할 다양한 정보를 홈페이지 첫 화면에 공개했다. 실제로 렌딧 홈페이지에선 세전 수익률뿐 아니라 재투자율, 연도별 대출 잔액, 연체율과 부실률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렌딧은 P2P 금융업계에선 유일하게 ‘분기별 대출자금 운용·관리 현황’도 공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약 3년간 축적한 데이터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투자자들이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할 수 있는 실시간 투자 분석 및 시뮬레이션 기능도 선보였다. 이에 따라 렌딧 투자자는 전체 투자자의 수익률 분포 그래프 속에서 본인의 수익률이 어느 수준인지 매일 체크하고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할 수 있다. 이처럼 투명한 서비스에 힘입어 렌딧 투자자의 재투자율은 73%를 기록하고 있다.
○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강력한 규제로 업계 자정 선도
2015년 P2P 금융시장이 태동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P2P 금융회사의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렌딧을 포함한 180여 개의 P2P 금융업체는 규제의 사각지대 속에서 임시방편으로 대부업체 등록을 하고 비즈니스를 펼쳐 왔다. 최근에는 부동산 P2P 대출 부실이 커지고 일부 업체 최고경영자(CEO)의 횡령 같은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서 P2P 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현재 P2P 금융의 법제화가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내용은 미정이다.
이런 가운데 렌딧은 P2P 금융 법제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자발적으로 자율규제안을 만들어 업계의 실천을 유도해 왔다. 자율규제안을 실천하기 위해 다른 P2P 업체들과 뜻을 모아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를 신설했고, 협의회 차원에서 P2P 대출자산의 신탁화, 외부 감사 기준 강화 등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보다 강도 높은 조치를 도입했다.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에는 자율규제안의 조건을 충족한 회사만 회원사로 가입할 수 있다. 이런 강력한 자율규제안을 통해 렌딧은 스스로 장기적인 비전을 갖춘 업체임을 시장에 보여주며 업계 자정에 나서고 있다.
문정빈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금융업은 대표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중요한 산업”이라며 “렌딧이 강력한 자율규제를 도입하기 위해 마켓플레이스금융협의회를 출범시킨 것은 장기적으로 P2P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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