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물품만 쌓여있는 르노삼성 협력업체 르노삼성 노조가 지난해 10월부터 160시간의 부분파업에 나서면서 협력업체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4일 생산이 중단된 채 재고 물품만 쌓여 있는 부산 강서구의 르노삼성 1차 협력업체 공장 모습. 부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공장 안은 썰렁했다.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기계는 단 두 대. ‘비가동’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는 기계 주변엔 생산을 하고도 공급하지 못한 부품이 들어 있는 박스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부산 강서구에서 차량용 내외장재를 만들어 르노삼성자동차에 주로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 A사의 모습이다. 4일 찾아간 이곳은 공장 가동률이 20%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 회사 대표 B 씨(69)는 “오늘 오전엔 작업 대신 2시간의 교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설비 16대 가운데 2대만 돌리다 보니 생산직원 총 32명 중 8명만 일하고 있어 나머지 24명에 대한 교육이 진행된 것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한때 주야간 2교대로 근무해 월 250만 원 이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물량이 줄면서 주간에만 일하다 보니 월급은 15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엔 생산량이 더 줄어 평균 급여가 100만 원에 그쳤다.
협력업체들의 상황이 이런데도 르노삼성차의 상황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도미닉 시뇨라 대표가 노사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8일을 앞두고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오던 부분 파업을 지난주까지 이어갔다. 2018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두고 벌어진 갈등으로, 총 파업시간을 합하면 160시간이나 된다.
▼ 협력사 대표단, 노조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 호소 ▼
5일 협력업체들의 모임인 르노삼성자동차수탁기업협의회의 나기원 회장(신흥기공 대표)을 비롯한 협력업체 대표단은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를 방문했다. 이미 호소문을 보낸 적 있는 협의회가 이날 노조 집행부를 직접 만나겠다고 나선 것이다. 르노삼성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닛산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의 수탁생산 계약이 올 9월 종료되고 후속 물량이 없다면 상당수 하청업체가 줄줄이 폐업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 나 회장은 “전체적으로 30%가량 물량이 줄었는데 ‘맷집’이 약할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들은 이미 위기를 겪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노조에 읍소했다.
부산 강서구의 플라스틱 부품 제조업체 C사는 르노삼성의 1차 협력업체지만 물량의 30%를 다른 곳에 납품하고 있어서 형편이 조금 낫다. 하지만 이 회사도 주 3일 또는 4일 근무로 조업 물량을 맞추고 있었다. 이 회사 대표 D 씨(60)는 “30년 넘게 일했는데 지난해에 가장 많이 쉬어 본 것 같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일단 버티고는 있지만 1, 2월 공장 가동률이 70%에 그치는 상황에서 D 씨는 “다음 물량을 받을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관심사인데 기한은 다가오고, 상황 변화는 없으니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는 일본에서 납품 가능성을 타진해 왔는데 요즘은 우리도 인건비를 못 맞춰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보니 연락이 뚝 끊겼다. 르노삼성 사측이 문제 삼는 인건비 상승 문제는 우리도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한 협력업체 직원 박모 씨(48)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르노삼성 직원들도 힘든 환경에서 일할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우리 같은 협력업체 직원도 같이 살아야 하니 어떻게든 노사가 합의점을 찾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르노삼성 노사는 5일 부산공장에서 교섭을 벌였지만 기본급 인상안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닛산으로부터 후속 물량을 받을 수 있을지를 놓고는 르노삼성차 노조원 사이에서도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퇴근길에 만난 르노삼성 직원 김모 씨(44)는 “르노 본사가 이익은 배당금으로 다 가져가면서 물량으로 윽박지르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또 다른 직원 박모 씨(41)는 “노조를 따라가고는 있지만 일감이 없으면 사람이 잘린다는 걸 직원들도 경험해 봤는데 불안한 마음이 왜 없겠느냐”며 “직원의 40%가량은 생산물량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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