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서울서 개최 예정이었던 ‘한일 경제인 회의’가 갑작스레 연기됐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이후 악화된 한일 간 외교 갈등이 경제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1일 한일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오는 5월13부터 15일까지 사흘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51회 한일 경제인회의가 9월 이후로 연기됐다.
한일경제인협회는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최근 한일 관계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양국 교류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양국 협회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회의의 내실화 및 성과 제고 등을 위해 회의 개최를 연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 협회는 이달 중 실무자 회의를 갖고 추후 날짜와 장소를 정할 예정이지만 최근 경색된 한일관계를 고려하면 회의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일경제인협회 관계자는 “양 국 협회장 간에 현 한일 관계를 고려해 회의를 연기하자는 합의가 있었다”며 “회의가 아예 무산되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일경제인회의는 양국 간 경제협력 증진을 위해 1969년부터 시작해 지난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국에서 번갈아 개최해 온 대표적인 한일 간 경제협력 회의다.
한일경제인협회 회장은 현재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이 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있다.
이 외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일본의 일한경제인협회는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 상사 특별고문이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에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경제인회의를 갖고 일본의 노동력 부족과 한국의 청년인재의 취직난 해결,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응, 방재대책 등 한일이 직면한 사회과제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일본 도쿄 올림픽의 성공개최 등을 위해 상호 협력해 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를 확정해 놓은 국제행사가 갑작스럽게 연기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며 “지난해 강제징용 판결 이후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경제협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양국 간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당시 한국 대법원은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 5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1인당 1억~1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지만, 미쓰비시 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1월 별세한 김중곤씨를 제외한 원 4명은 이달 7일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자산 압류명령 신청을 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극히 심각한 상황으로 ”한국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의 국가 간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자민당 내부에서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 등 핵심 원료에 대한 한국 수출금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양국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일 간 교역액은 851억9000만달러(96조7300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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