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치료 목표는 ‘복귀’… 치료 전과정 1 대 1 관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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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도입한 ‘산재관리의사’ 제도

국내 1호 산재관리의사인 임호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장이 ‘중력 조절 보행 재활 시스템’으로 걷기 연습을 하는 환자를 살피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제공
국내 1호 산재관리의사인 임호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장이 ‘중력 조절 보행 재활 시스템’으로 걷기 연습을 하는 환자를 살피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제공
지난달 13일 찾은 경기 안산시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내 재활운동치료실. 50대 여성 A 씨는 공기가 꽉 찬 튜브 속에 들어가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 기구 이름은 ‘중력 조절 보행 재활 시스템’. 허리춤에 끼운 튜브가 체중을 최대 80%까지 줄여준다. 다리를 다쳐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환자가 자연스럽게 보행 훈련을 하도록 돕는 기구다. A 씨는 자신의 발 모양을 비추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한 걸음씩 걷기 연습을 했다.

A 씨는 2017년 공장에서 일을 하다 기계에 다리가 끼는 사고로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손상됐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A 씨는 사고가 난 지 8개월 뒤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뼈가 굳어버린 상태였다. 전아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재활센터장(44)은 “골절 이후 뼈가 다 붙지 않은 상태라도 보행 연습을 해야 나중에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며 “재활치료는 수술치료 이후에 하는 게 아니라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상담부터 재활까지 모든 과정 지원

전 센터장은 이 병원의 산재관리의사 중 한 명이다. 산재관리의사란 산업재해 환자의 초기 치료 단계부터 상담, 재활치료, 직업 복귀까지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1월 전문의 39명을 국내 최초로 산재관리의사에 임명했다. 이들은 A 씨처럼 산업재해 후 신체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독일은 이미 1921년부터 ‘산재보험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산재관리의사 4100여 명이 연간 300만 명의 산재환자를 돌본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제도를 한국 현실에 맡게 벤치마킹했다. 산재관리의사는 처음 산재 환자가 병원을 찾았을 때 상담부터 담당한다.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고 향후 치료계획을 안내한다. 재활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는 일도 이들의 임무 중 하나다.

전 센터장은 “똑같은 절단 환자라도 모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대일로 환자를 돌봐야 한다”며 “주치의, 치료사, 임상심리사, 간호사 등이 매주 회의를 해 환자의 재활치료 과정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산재관리의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만큼 산재 신청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산재 신청 건수는 13만8576건으로 전년(11만3716건)보다 21.9% 늘었다. 매년 11만 건 내외를 기록하던 산재 신청은 지난해 1월부터 사업주에게 재해 경위 사실을 확인받아야 하는 절차를 없애면서 크게 증가했다.

○ 민간 병원으로 산재의사 확대해야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의 전아영 재활센터장이 산재 환자의 상태에 맞춰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처음 임명된 산재관리의사는 산재 환자의 초기 치료 단계부터 재활치료, 직업 복귀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안산=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의 전아영 재활센터장이 산재 환자의 상태에 맞춰 일대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처음 임명된 산재관리의사는 산재 환자의 초기 치료 단계부터 재활치료, 직업 복귀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안산=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산재 환자들은 제대로 된 재활 시스템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산재관리의사 1호인 임호영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장(66)은 ‘선(先)치료 후(後)재활’이라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병원장은 “골절상을 입은 경우 대학병원에서 수술 받은 후 종합병원 치료와 물리치료 순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사전에 직장 복귀까지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상을 입은 이후 곧바로 재활치료를 병행했을 때 직장 복귀 성공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공무원 박모 씨(36)는 2017년 12월 허리에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를 겪었다. 하지만 1년 뒤 직장 복귀에 성공했다. 수술 후 6주 만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을 찾아 재활치료를 받은 덕분이다. 천장에 달린 벨트를 매고 레일을 따라 걷는 ‘워크메이트’, 물의 부력을 통해 걷는 ‘수중 보행풀’ 등 다양한 운동기구의 도움을 받았다. 박 씨와 같이 신속히 직장으로 복귀하는 사례를 늘리는 것이 산재관리의사 제도의 도입 취지다.

적기에 재활치료를 시작하면 치료 기간이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다. 산재로 인정받을 경우 치료하는 동안 사고 전 평균 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받는다. 문제는 휴업급여 지급 기간을 늘리기 위해 치료를 소홀히 하는 환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임 병원장은 “집중적인 재활치료는 환자의 후유증을 줄여줄 뿐 아니라 휴업급여 제도를 악용할 소지도 없애준다”고 말했다.

임 병원장은 또 “독일의 경우 산재가 나면 산재관리의사가 직접 현장에 투입돼 재해 여부, 환자의 중증도 상태 등을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다”며 “우리나라도 제도 안착을 위해 산재관리의사의 역할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환자가 산재관리의사가 있는 병원에 와야만 관여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중증외상센터로 유명한 아주대병원 등 민간 병원에도 산재관리의사를 임명할 예정이다. 산재관리의사가 있는 민간 병원은 현재 7곳뿐이다. 임 병원장은 “민간 병원의 산재관리의사가 재활치료가 특화된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도록 하는 선순환 체계가 작동한다면 현재 65%인 산재 환자의 직장 복귀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산=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산업재해#산재관리의사#산재 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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