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21일 3년7개월 간의 통합 은행 초대 행장으로서 임기를 마무리했다. 지난해부터 채용비리 혐의 재판을 받고 있고, 금융감독원이 자신의 3연임에 반대하며 관치 논란이 거세지자 스스로 용퇴를 결정한 함 행장. 우여곡절로 38년 은행원 인생을 마무리하는 함 행장은 이날 이임식에서 여러차례 눈물을 쏟았다.
함 행장은 이날 을지로 신사옥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공자의 진퇴현은(進退見隱·나이가 들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안다)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며 “그간 너무 앞만 보고 거침없이 달려오다 보니 잠시 쉬어가야겠다”는 퇴임 소회를 밝혔다. 함 행장은 우황청심환을 먹고 연단에 오르고, 수차례 물을 들이켤 정도로 이날 내내 긴장해 있었다.
함 행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후 교차발령, 전산통합, 노조·인사통합으로 이어진 통합 역사를 일일이 언급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었던 소임이었다. 고난 속에서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파고를 이겨내서 아무도 이렇게 빨리 이룰거라 예상하지 못한 통합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함 행장은 지성규 신임 행장을 “늘 부지런하고 의욕이 넘치며, 조직에 대한 로열티(충성심)로 성과를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지 행장 체제의 하나은행이 통합 은행 기반 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라고 당부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함 행장은 후배인 지 행장과 최근 수시로 만나 ‘행장 수업’을 하며 여러 경영 노하우를 전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 행장은 통합 은행 2기를 이끌 지 행장에게 물리적 통합을 넘어선 화학적 통합, 글로벌 시장 개척, 세심한 리더십 등을 특히 강조했다고 한다.
지 신임 행장도 이날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함 전 행장께서 초대 행장으로서 많은 터전을 닦아주신 만큼, 제가 이어받아서 외형상 통합을 넘어선 진정한 정서적 통합을 빠른 시간 내에 이루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날 이·취임식에 손을 나란히 잡고 입장하고, 지 행장이 함 전 행장을 배웅하는 등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은행 직원들은 떠나는 함 행장에게 헌정 영상·공연, 순금 감사패, 만년필 등을 선물했다. 직원들이 준 선물 중 핀란드행 비행기 티켓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함 행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에 입행해 지금까지 38년 간 단 한번도 가족과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어서 직원들이 강제로 휴가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김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함 행장이 자연스럽게 차기 회장으로 유력할 것이라는 예상이 하나금융 안팎에서 나온다. 아직 현 회장의 임기가 한참 남아있고, 함 행장의 채용비리 등 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서 벌써부터 차기를 논하기에는 이르기는 하다. 그러나 함 행장이 그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는 분위기다.
함 행장은 앞으로 행보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날 이임식에서 스스로 ‘쉬고 싶다’고 강조할 정도로 최근 심신이 많이 지쳐 있다고 알려진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고 재판을 마무리하는 정중동 행보를 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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