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자회사 만든다는 산은… 책임 떠넘기기-옥상옥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6일 03시 00분


임기 절반 돈 이동걸 회장 강한 의지
올 상반기내 설립안 공개하고 스타트업-벤처 육성에 집중할 계획
“원활한 구조조정 추진보다 산은 퇴직자 자리 만들기” 비판도

이동걸 회장
이동걸 회장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는 ‘빅딜’을 성사시킨 KDB산업은행이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 AMC’(가칭)를 설립한다. 산업은행은 올 상반기 내로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 설립안을 공개하고 대우건설, 동부제철 등 남은 출자회사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구조조정 자회사 설립에는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이동걸 회장의 강한 의지가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별도의 자회사 설립이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보다는 결국 산은 퇴직자를 위한 자리만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 구조조정 전담시켜 자회사 중점 관리

산은의 AMC 설립은 지금까지 구조조정 업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산은 직원들의 순환보직 때문에 자회사의 경영 상황을 꿰뚫고 있는 인력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긴급한 자금지원 등 재무적인 결정은 지금처럼 산은이 내리되, 출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과 사업 구조조정, 자금 회수 등 구조조정 실무는 자회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계획이다.


자회사 인력은 일단 산은에서 직원들을 파견해 20여 명 규모로 출발하지만 추후 외부 전문가도 수혈한다.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구조조정 플레이어로 키운다는 목표다. 산은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주고 그 대신 실패하면 과감한 인력교체를 하면서 더 빠른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채권 금융기관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이 여러모로 한계에 다다른 만큼 자본시장에서 전문기관을 따로 키워야 한다는 당국의 의지도 반영됐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발표한 ‘혁신금융 추진방향’에서 산은의 구조조정 자회사를 이런 전문기관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산은은 AMC를 통해 구조조정 부담에서 벗어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벤처기업을 키워내는 데 몰두할 계획이다. 산은은 이동걸 회장의 취임 이후 유망 스타트업·벤처기업에 투자 유치 기회를 제공하는 ‘넥스트 라운드’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8월 시작된 넥스트 라운드는 지난해 말까지 총 215회 개최됐고 738개 기업이 IR에 나서 7084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 회장은 2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가고 있는데 우리만 ‘석기 시대’에 살 수는 없지 않으냐”며 “앞으로 산업은행은 미래 지향적인 분야에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옥상옥’ 되는 것 아니냐 우려도

하지만 산은의 AMC를 두고 결국 ‘구조조정 책임 떠넘기기’를 위한 회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얽혀 있는 구조조정은 웬만해선 비난을 피할 수 없어 ‘잘해야 본전’인 분야다. 이 회장 역시 금호타이어 매각 협상 결렬,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 포기,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등의 과정에서 책임론에 시달려야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잘되지 않던 구조조정이 전문회사로 넘긴다고 갑자기 잘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결국 해봤자 욕만 먹는 구조조정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 아니냐”고 평가했다.

퇴직한 산은 직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벌써부터 AMC 사장 내정자로 전 산은 임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자회사라는 것은 결국 산은의 통제하에 두는 것인데 과연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예 민관 합동펀드로 분리시키는 등 AMC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산업은행#구조조정 자회사#이동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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