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결국 주주 손에 물러나는 오너가 총수가 됐다. 조 회장이 주주권 행사에 따라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오게 되며, 오너리스크에 대한 경영권 약화도 현실화됐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이날 주총에는 위임장 제출 등을 포함해 5789명이 출석했다. 그 주식수는 7004만946주로, 의결권 있는 주식총수 9484만4611주의 73.84%에 해당한다.
이 중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안건은 표대결에서 찬성 64.1%, 반대 35.9%로 참석 주주 3분의 2(66.6%)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결국 부결됐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4월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된 지 20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날 최대 관심사였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불발되자 주총장 내에서는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찬반에 대한 정확한 집계를 바란다”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상정되기 전인 제1호, 제2호 의안 통과 과정보다는 주주들의 재청이 빠르게 이뤄졌다.
한 주주는 “제58기 주총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조양호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사전 반대 의사 표시를 통해 부결을 선언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선 하등의 이의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제1호 안건인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에 대해서는 일부 주주들이 경영진에 실적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며 다소 지연되기도 했다. 이날 주총장에 위임장을 들고 온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오늘 이 자리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직원연대, 참여연대, 민변 등과 대한항공 정상화 바라는 주주와 뜻 함께 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10월 조양호 회장은 이것보다 더한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이런 문제 때문에 주총에 왔고, 부실 계열사 한진해운에 지원해서 약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회사 실적 곤두박질 친 것에 대해서 이사회는 어떤 논의를 했느냐”며 경영진에 답변을 요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부회장인 김남근 변호사도 오너가의 배임·횡령 혐의, 관세법 위반 혐의를 거론하 주총장에서 오너일가의 관세법 위반 혐의를 거론하며 “이사회에서 어떤 진상규명과 조치를 취하는지 답변해달라”고 발언했다.
이에 다른 주총장 내 다른 주주들은 “아직 재판 중인데 왜 비판하느냐, 검찰과 재판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반발하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주총 의장을 맡은 우기홍 부사장은 안건과 상관없는 발언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제3호 안건인 이사 선임의 건과 관련, 앞서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 조 회장의 연임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을 11.56% 들고 있어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33.35%)에 이은 2대 주주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전날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수탁위는 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혹은 주주권의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수탁위는 조양호 회장 외에 부인과 세 자녀는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글로벌 의결권 가문사 ISS와 국내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등이 이미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를 권고했고, 국민연금도 이같은 기류에 동참했다.
결국 참석 주주들도 조 회장의 연임 반대에 기울면서,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가의 지배력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사내이사로 남아 있지만, 대한항공에 대한 오너가의 영향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불발에 대해 “향후 절차에 따라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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