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남편이 반말했다고 똑같이 반말한 편의점 알바생 너무 억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지난해 8월 올라왔다. 30대 초반인 남편이 직원에게 “야, 라면 이것밖에 없냐”라고 물었는데 아르바이트 직원이 “어, 그것밖에 없어”라며 반말로 응대했다는 것이다. 여성은 “이런 편의점은 한번 당해 봐야 할 것 같다”며 지역과 상호명을 공개하겠다고 적었다. 이 글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다.
눈길을 끈 건 누리꾼들의 반응이었다. 같이 분노해 줄 것이라는 여성의 기대와는 달리 댓글 대부분은 손님인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칭찬과 함께 진상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격려하고 싶다’고 쓴 누리꾼의 댓글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고객 응대의 기준이던 소비자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최근 고객과 직원 상호 존중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워커밸(worker and customer balance·직원과 손님 사이의 균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얼마 전 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는 ‘알바를 리스펙(Respect·존중하다)’이란 광고 문구로 공감을 얻었다. 직원들의 고군분투를 담은 이 광고는 ‘최저시급은 나라에서 올려주지만 최저인식은 우리가 올려줘야 한다’는 멘트로 끝을 맺는다.
‘매너 소비’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는 인권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20, 3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영애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젊은층의 특성이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들도 직원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폭행 등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공고문 게시 등 관련 조치를 해야 한다.
현대백화점은 고객상담실 등에 “(직원) 인권 보호를 위해 고성, 욕설 등의 자제를 부탁한다”는 문구를 붙였고, 고객이 욕설이나 폭언을 할 경우 상담을 중단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매장에 ‘마주하고 있는 직원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협조문을 게시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을 위해 심리상담사 등을 현장에 배치했다.
실제로 ‘갑질 고객’에 대한 대응 방식이 바뀌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50대 여성이 1년 전 산 옷의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직원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직원이 거부하자 여성은 수차례 매장을 방문해 욕설을 하며 영업을 방해했다. 백화점은 경찰 신고로 응대했다. 지난해 울산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에게 햄버거를 던진 남성은 매장 측의 신고로 입건됐다.
매너 소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퍼지고 있지만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댓글을 통한 욕설이나 폭언 등 온라인 갑질이 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파성이 높은 온라인 특성상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졌을 때 기업의 피해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수 있다”면서 “관련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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