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초기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는 현행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11일 나오면서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과 임신중절수술 의사를 처벌하는 행정규칙을 헌재 결정 취지에 맞도록 손질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지금껏 허용하지 않았던 사회경제적 이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을 어디까지, 얼마나 확실히 규제할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모자보건법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형법을 관할하는 법무부 이외 여성가족부, 국회 등과 함께 법·제도 전반을 들여다 볼 예정이다.
낙태죄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 2가지 법률이 얼개를 짜고 있다. 형법 269조 1항과 270조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한 의사를 각각 1년·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모자보건법은 그에 대한 예외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임신 6개월(24주)에 한해 Δ유전적 장애 Δ전염성 질환 Δ강간 또는 준강간 Δ혈족·인척 간 임신 Δ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가 현행 모자보건법이 밝히고 있는 예외 사유다.
이날 헌재는 이러한 형법 조항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면서 2020년 말까지 낙태죄 관련 법 개정을 요구했다. 또한 모자보건법 조항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갈등 상황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형법과 함께 모자보건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규정한 ‘합법적’ 인공임신중절은 2017년 기준 3787건(건강보험심사평가원)뿐이다. 반면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전체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연간 5만건에 육박한다.
지금껏 합법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회경제적 이유에 의한 4만6000여건 정도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불허할 지 규정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사회경제적 사유를 법 조항에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해당 사유에 대한 증명을 얼마나 요구할지 등도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손문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모자보건법 개정은 형법 상 낙태죄를 어떻게 손볼지와 함께 봐야 하는 사안이며, 앞으로 국회·유관부처·의료계 등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현재는 헌재 취지문을 법·제도에 100% 반영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 “의사 신념에 따른 수술 거부를 진료 거부로 환자들이 인식할 수 있다는 의료계 우려 등도 정부가 잘 알고 있다”며 “헌재 취지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환자와 의사에게 합리적인 후속조치를 하겠다”고 부연했다.
법률 개정과 별개로 행정처분규칙 역시 손질이 불가피하다. 의사의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하도록 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이 대표적인 개정 검토대상이다.
지난해 복지부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을 통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의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다 의사들 반발에 부딪혀 이를 유예했다. 해당 유예가 지속될 지에 대해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으나,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미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률과 행정규칙 개정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말을 아낄 단계”라면서 “헌재 결정문을 면밀히 분석해 결정 취지를 완전히 파악하고 제도가 바뀌는 데 따른 사회 각 부문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인 후속조치 계획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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