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한정’ 발단…그룹 유동성 위기로 번져
작년 11월 新외부감사법 시행 깐깐해진 외부감사…제2아시아나 배제 못해
국내 항공업계 양대 축 중 하나인 아시아나항공이 매각 절차를 밟는다. 1988년 2월 서울항공으로 첫걸음을 뗀 지 31년 만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은 올해에만 1조7000억원의 부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보유 현금이 부족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결국 매각이 결정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번 사태의 출발점에는 지난해 11월 시행된 신(新) 외부감사법이 자리하고 있다. 신 외부감사법으로 외부감사인의 기업 회계 감사가 한층 더 까다로워졌는데, 아시아나항공이 이런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서 촉발된 ‘회계 쇼크’가 그룹 전체의 위기로 번졌고, 결국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결론난 셈이다.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한정’…결국 유동성 위기 직면
아시아나항공이 지난달 22일 제출기한을 하루 넘겨 공시한 감사보고서가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에 운용리스항공기 정비충당부채 등을 판단할 세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한정 의견은 감사 범위가 부분적으로 제한되거나 재무제표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라도 기업회계 준칙에 따르지 않은 몇 가지 사항이 있을 때 제시된다. 이 여파로 모회사인 금호산업도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두 회사의 주식 매매는 같은달 22~25일 이틀간 정지됐다.
이어 아시아나항공은 26일 재감사를 통해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정정한다고 공시했다. 한정 의견을 받은 지 나흘 만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지적한 Δ에어부산을 종속기업으로 분류한 데 따른 자본총계 과소계상 Δ마일리지이연수익 Δ운용리스항공기 정비충당부채 관련 수정사항을 반영했다.
하지만 작년 영업이익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등 회계 상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수치는 더욱 악화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7조1834억원으로 전년 대비 8.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종전 887억원에서 282억원으로 88.5% 감소했다. 당기순손실은 1050억원에서 1959억원으로 약 2배 늘었다. 감사의견은 적정으로 변경됐지만 결국 시장 불신은 더욱 커진 것이다.
이에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 ‘BBB-’에서 하향 조정을 검토하고 나섰다.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도 하락, 재무제표 악화, 유동성 위험 등 제반 여건이 여전히 안 좋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1조원이 넘는 ABS(자산유동화증권)를 조기 상환해야 하는 트리거 조항이 발동한다는 것이었다. 회계 쇼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확대된 것이다. 이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사퇴 카드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25일까지 신용등급 BBB- 이상의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면 ‘무등급 트리거’가 발동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9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5000억원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했다. 하지만 채권단은 이 자구안에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며 퇴짜를 놨다. 자구안이 박삼구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의 금호고속 지분 4.79%(약 200억원)만 새 담보로 제공하는 수준에 그쳐 향후 채권단의 추가 자금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200억원을 내고 5000억원을 달라는 꼴”이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채권단내에서 나왔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5일 오전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포함된 수정 자구계획을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박삼구 전 회장과 박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이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매각 의사를 전달했다. 이른바 ‘백기투항’한 셈이다. 그룹 연간 매출의 60%를 담당는 아시아나항공이 매각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아 중견기업으로 쪼그라든다.
◇깐깐해진 외부감사, 제2의 아시아나항공 가능성 배제 못해
그동안 적정 의견을 받아왔던 아시아나항공이 한정 의견을 받은 것은 신 외부감사법 시행으로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재무제표를 기존보다 깐깐히 따져봤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부채나 수익 규모를 가늠하는 데 필요한 증거 일부를 제시하지 않자, 삼일회계법인은 459억원 흑자로 적은 영업 실적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로 한정 의견을 냈다. 과거 업계에서 눈감고 넘어가던 일이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신 외부감사법에 따라 감사인의 회계기준 위반이나 오류가 밝혀지면 징계로 이어져 ‘봐주기 감사’가 차단된다. 외부감사인 자유 선임으로 이뤄진 회계 감사를 향후 지정 감사인이 다시 판단할 수 있어, 애초에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한 깐깐한 감사도 기대된다.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12월 결산 상장사 중 한정이나 의견거절 등 비적정 의견을 받은 코스피·코스닥 기업은 총 34곳에 달했다. 지난해(24곳)보다 40%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앞으로 제2의 아시아나항공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신 외부감사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된 것은 올해가 처음인 만큼 앞으로 영향이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관련 자료나 증빙을 충분히 감사인에게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숨기는 곳들이 여전히 있다. 옛날의 잘못된 습관이나 행태를 계속 고집하다보니깐 불상사가 일어난다”면서 “국민적, 사회적 요구와 여망에 따라 회계 제도와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변화하고 있다. 한정이나 의견 거절 등 비적정 의견을 받는 상장사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일부 기업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은 어제오늘이 아니고 거의 10년째 세계 꼴찌 수준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회계제도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에 빨리 적응해서 기업 스스로가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회계업계나, 어느 개인, 단체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회계 개혁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서 국회가 법을 개정해 국가의 시스템이 바뀌는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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