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었던 시스템반도체…정부·삼성 ‘지금이 마지막 기회’ 공감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19시 12분


30일 정부와 삼성전자 등 민관이 손잡고 ‘시스템 반도체 비전’을 발표한 배경에는 ‘지금이 시스템 반도체를 키울 마지막 기회’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행사가 열린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까지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고 불렸지만 데이터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거대한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엔진이자 미래를 열어가는 데 꼭 필요한 동력”이라고 했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을 가능케 하는 모든 데이터 기술의 밑바탕에 시스템 반도체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 한발 늦었던 시스템 반도체

사실 한국도 20년 전부터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여러 시도를 했다.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으로 올라선 삼성전자는 1997년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를 만들었다. ‘비메모리가 아닌, 메모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부서의 이름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오면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수 없었다.

지난해 한국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3.1%였다. 2009년 점유율이 2.9%였으니 10년간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기술 진입 장벽이 낮고 소품종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 위주로 뛰어들다 보니 시스템 반도체 육성이 늦어졌다”고 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생산시설(팹) 없이 설계 및 개발만 하는 ‘팹리스’ 산업이 850억 달러(약 98조6000억 원) 시장으로 가장 크다. 이 시장을 퀄컴과 엔비디아, AMD 등 미국 업체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 뒤를 중국 기업들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에 든 한국 업체는 없다.

생산만 하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에서도 710억 달러(약 82조3600억 원) 시장을 대만 TMSC가 48%가량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2위이지만 지난해 매출액(104억 달러)은 TSMC의 3분의 1 수준이다.

2005년 파운드리 사업팀을 만든 삼성전자는 2017년에 이를 별도 사업부로 격상시켰다. 꾸준한 기술 투자를 이어온 끝에 이달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기반7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초미세 공정을 통한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는 성과를 냈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도 EUV 7nm 공정으로 만든 첫 칩과 웨이퍼 출하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행사 종료 뒤 삼성전자 EUV동 건설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은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도약대 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라며 “앞으로 로봇 바이오 자동차 등 산업 전 분야에 활용되면 2022년에는 3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 기업이 끌고 정부가 밀어 3대 신산업 육성

미국 중국 대만 등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국가들의 특징은 모두 정부 차원의 집중 육성 전략이 있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을 찾은 것도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미래차라는 ‘문재인 정부표’ 3대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삼성전자 방문을 신호탄으로 한국 경제 체질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기 위한 정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사람과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며 “반도체 분야에서 국가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유망 수요 기술은 정부 R&D에 우선 반영하겠다. 내년부터 1조 원 수준의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해 차세대 반도체 원천기술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24일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10년간 133조 원을 투자하고 전문 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기업과 △자동차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에너지 △첨단로봇 등 5대 전략 분야의 수요를 전략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반도체 생산 기업에 대해선 세제와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2021년부터 연세대(삼성)와 고려대(SK하이닉스)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만들어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문병기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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