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해외 반도체 생산 공장이 소비하고 있는 전력의 100%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갑자기 에너지 정책 노선 변화를 선언한 기업은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이보다 4개월 먼저 삼성전자도 미국, 유럽, 중국 내 사업장을 202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겠다고 나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소비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시장 확장은 고사하고 기존 고객마저 잃게 생긴 탓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고객들이 일찌감치 재생에너지로 소비전력 전량을 조달하며 납품업체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7년 연속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인 애플은 ‘클린 에너지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2015년부터 200개가 넘는 납품업체들에 ‘100%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산한 부품만 납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환경이 변하자 에너지 전환이 단순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 아니라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의미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재생에너지 사용은 기업의 에너지 비용을 낮춰줄 수 있다. 물론 단위 발전비용만 따지면 석탄이나 원자력이 태양광이나 풍력보다 여전히 싸다. 하지만 원료비, 운영비, 폐기비, 대기오염물질 및 온실가스 처리비 등까지 고려한 균등화 발전원가를 따지면 재생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
둘째, 이런 재생에너지 전환 방침은 기업의 신용등급 상승과 투자 유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들이 기후변화 위험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중요한 기업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개선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까다로워지면서 친환경 기업과 제품을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정책 환경에서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환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선진국에선 에너지 조달 수단이 자가발전부터 인증서 구매, 녹색요금제, 직접 구매계약 체결 등 다양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관련 법규가 없고 직접 구매계약 체결 방식이 도입되지 않아 비용 효율성이 낮은 자가발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처럼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기업의 경우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려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업의 에너지 전환이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넘어 경영 전략으로서 의미를 갖게 하려면 국내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확보 경로를 다각화하기 위한 법규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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