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으로 군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이번 무역전쟁의 여파는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
“미중 무역전쟁은 최고 자리를 둔 다툼이라 죽음까지 갈 수 있는 싸움입니다. 이 사실을 중국 지도자들이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
미국과 중국의 금융 전문가들은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9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최근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이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일시적인 갈등이 아니라 앞으로 장기화할 것이고, 세계 금융 및 통신망을 놓고 다투는 ‘기술전쟁’으로 번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강연자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 “미중 무역전쟁 수십 년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정치 환경을 고려하면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중국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해야 내부적으로 결집하기 쉽고, 중국은 미국에 도발하며 우위를 입증해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치 교수는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로 최악의 정치 양극화 상태이기 때문에 (사회 불만을 다독이기 위해) 중국을 거칠게 공격한다”며 “미국 중산층은 사회 문제가 중국 때문이라 믿고 있고 미국 의회도 초당파적으로 중국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셰 전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에 미국에 당한) 일본 재계의 리더들이 중국 정치인들에게 ‘미국이 언젠가 중국을 압박할 거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주의를 줬다”고 설명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때 미국의 압박으로 엔화 가치가 절상돼 일본 경제가 위기에 빠진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이어 “중국 국민은 중국의 추월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을 참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이러한 양국의 갈등은 중국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로치 교수는 “중국 경제가 위기 직전이고, 미국은 초강대국이란 인식이 있는데 이는 과장됐다”며 “중국은 저축률, 투자율이 높아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견고하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저축률과 생산성이 낮아 장기 전망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셰 전 이코노미스트는 “서구는 이제 하락세고 동아시아가 세계 중심이 되는 건 불가피한 흐름”이라며 “미중 갈등은 수십 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이 두 나라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를 통째로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며 최근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며 “세계 경제에 직접 충격파를 주고 경제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무역전쟁보다 10배 심각한 기술전쟁 올 것”
미중 무역전쟁보다 훨씬 강도 높은 미중 기술전쟁도 예고됐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돼도 기술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은 ‘중국제조 2025’ 정책으로 산업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은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을 규제하고 전략적으로 중국의 기업 인수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셰 전 이코노미스트도 “무역전쟁보다 기술전쟁이 10배 이상 심각하단 얘기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정부는 이번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계기로 중국 스스로의 기술표준과 공급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라며 “중국은 워낙 규모가 커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최근 구글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회사 화웨이에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중국 정부가 향후 비슷한 위험에 처하지 않기 위해 자국 기술표준과 공급 체계를 구축할 것이란 얘기다.
미중 갈등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로치 교수는 “아니다”라고 봤다. 다만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양국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치 교수는 “양국이 투자조약을 맺어 외국인 지분 제한을 서로 없앨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선 양국의 대화가 식사만 같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대화를 상시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전략은 더 세밀해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셰 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향후 몇 년간 어떤 핵심 경쟁력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중 갈등에 휩쓸리지 말고 한쪽 기술을 너무 많이 활용하지 않는 식으로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남건우 기자
● 주요 참석자 명단 (가나다순)
▽금융계 김도진 IBK기업은행 행장, 박진회 한국씨티은행 행장,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이대훈 NH농협은행 행장, 이용우 카카오뱅크 대표이사, 지성규 KEB하나은행 행장, 진옥동 신한은행 행장
▽금융 관련 협회 권용원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 김덕수 여신금융협회 회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신용길 생명보험협회 회장
▽정·관계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정무위원회 간사),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책위의장),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기획재정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연사 및 패널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 앤디 셰 전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 야곱 달 맥킨지앤드컴퍼니 아시아뱅킹리더, 이성용 신한금융지주 미래전략연구소 대표,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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