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라면 맛있어요” 동남아서 인기…가격 3배 비싸도 없어서 못 팔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6일 1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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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시암파라곤 백화점의 식품관 ‘고메 마켓’ 한 벽면에 자리한 한국 라면 진열대. 비교적 매운 맛에 거부감이 없는 동남아 소비자들에게 K누들은 색다른 매운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방콕=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방콕 시암파라곤 백화점의 식품관 ‘고메 마켓’ 한 벽면에 자리한 한국 라면 진열대. 비교적 매운 맛에 거부감이 없는 동남아 소비자들에게 K누들은 색다른 매운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방콕=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지난 달 중순 방문한 태국 방콕 최대 규모의 시암파라곤 백화점. 이곳의 식품관 ‘고메 마켓’ 한 벽면은 신라면·불닭볶음면 등 한국산 면(noodle) 상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로 길이가 10m에 달하는 상품 진열대엔 한국어 상품명이 붙은 봉지라면부터 컵라면, 미니 컵라면 등이 종류별로 있었다. 방콕에 사는 인도인 로레인 씨(31)는 “매운 맛과 치즈 맛이 조화를 이루는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이틀에 한번 꼴로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치민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한국 면 상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마트 입구에서 열린 ‘K푸드’ 할인행사에서 한국의 라면 제품은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위치했다. 마트 안쪽엔 한국 면 상품만 모아놓은 진열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마트 직원은 “베트남 고추가 유명하지 않느냐”면서 “한국 사람들처럼 베트남 사람들도 매운 맛에 거부감이 없어 한국 라면이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K누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면 상품 가격은 현지 제품보다 3배가량 비싼데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가 하면, ‘국물 라면’에 익숙하지 않던 현지인들의 입맛도 바꿔놓고 있었다. 농심, 신세계푸드 등 한국 기업들이 선보인 면 상품이 잇따라 히트를 치자 현지 기업들이 이를 따라한 유사 상품까지 내놨다.

“한국식 국물 라면 맛있어요”

동남아 소비자들은 원래는 라면을 먹을 때 면만 삶아서 스프를 위에 뿌려 먹는다. 라면을 한 끼 식사보다는 반찬의 개념으로 생각해 밥에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면과 스프를 한꺼번에 넣고 끓여서 국물과 함께 먹는 ‘한국식 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은 신라면을 한국식으로 먹어 보는 시식행사를 진행하고 유통채널을 다변화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3800만 달러(약 448억 원)였던 동남아 수출액을 올해 5200만 달러(약 613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20대 인도네시아 여성 드위는 “한국 사람들이 라면을 뜨거운 냄비채로 국물과 먹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충격적이었다”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따라 먹어 봤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그 이후로 자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도네시아인 아그네는 “국물식 라면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현지 식당에서도 한국 라면을 파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김치를 비롯해 짜장, 비빔면 소스 등을 활용한 제품도 인기다. 신세계푸드의 ‘대박라면 김치맛’은 진한 한국 김치찌개 맛으로 현지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다. 오뚜기는 진짜장, 북경짜장 등 짜장라면으로 현지 소비자를 공략 중이다. 동남아에서 지난해 전년 대비 20% 성장하며 110억 원의 매출을 냈다. 팔도는 팔도비빔면과 팔도짜장면을 필두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300만 달러였던 수출 규모는 2017년 600만 달러로 2배가량 증가했다.

유사상품 등장하고, 가격 3배 비싸도 팔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의 ‘화끈하게 매운 맛’으로 동남아 젊은층 입맛을 사로잡았다. 삼양식품의 동남아 지역 수출액은 2015년 60억 원에서 지난해 760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는데, 이 중 불닭볶음면 비중이 90%에 달한다.

불닭볶음면이 현지인들에게 ‘불닭(Buldak)’으로 불리며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현지 업체들은 ‘한국의 맛’이란 콘셉트로 유사상품까지 내놨다. 태국 라면 업계의 3대 브랜드 중 하나인 ‘마마’는 지난해 ‘오리엔탈 치킨 라면-매운 한국맛’이라는 제품을 출시하며 불닭볶음면을 벤치마킹했다. 겉 포장지 색상을 불닭볶음면과 똑같이 검정색으로 하고, 내용물 구성(면 액상스프 후레이크)도 비슷하다. 일본 식품제조업체 닛신은 태국에서 ‘격 라면-한국불닭맛’을 출시하기도 했다.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에 거주 중인 20대 여성 팜퀴녀는 “유명 연예인들이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따라 먹게 된 친구들도 많다”면서 “색다르게 매운 맛이 매력적이고 동남아 상품보다 포장지 디자인이 예쁜 것도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신세계푸드의 ‘대박라면’은 말레이시아 현지 라면보다 가격이 3배 이상 비싼데도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해 3월부터 판매된 대박라면의 가격은 봉지라면 4개 기준으로 약 18링깃(5132원)이다. 현지 라면 평균 가격(5링깃, 1425원)의 3배가 넘지만 1년 만에 400만 개 넘게 팔렸다.

신세계푸드가 기세를 몰아 올 3월 내놓은 ‘대박라면 고스트 페퍼’는 공급물량이 부족할 정도다.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고스트 페퍼’를 활용한 점이 인기를 끌면서 완판 행진을 이어지고 있다. 당초 월 7만개 판매가 목표였지만 출시 2주 만에 7만 개가 팔리고 석 달 만에 60만 개가 팔렸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할랄인증을 마친 고스트 페퍼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물량을 맞추기 어려웠을 정도였다”면서 “하반기에는 말레이시아 외에 태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남아는 국내 식품업체들이 미래 성장을 위해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곳이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라면소비량은 약 1036억 개로, 이 중 아시아에서 소비되는 비중은 약 800억 개로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한다. 동남아는 국내 라면 업체가 매출을 확대하기 좋은 가까운 시장인 셈이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6900만여 명에 달하고, 필리핀(1억810만 여명), 베트남(9742만 명), 말레이시아(3240만여 명) 등도 거대한 잠재 시장으로 꼽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은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젊은 층 비중이 높고 한국 문화에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한국 식품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서 편의점 간편식으로도 라면 인기

GS리테일은 베트남에서 자사 편의점 GS25 매장을 확장하며 한국식 면 상품 판매에 공들이고 있다. 외식을 선호하는 베트남 소비자들이 간편하게 음식을 먹고 싶을 때 편의점을 찾고 있어서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국민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53.9개로 한국(74.6개)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GS25는 한국의 면 제품이 베트남에서 GS25의 인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GS25는 라볶이와 잡채 등 이색 상품으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공략 중이다. 특이한 점은 한국식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 라볶이는 국물 떡볶이에 라면을 넣어 함께 볶은 후 삶은 계란을 올려 제공한다. 면과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베트남 소비자 입맛에 맞아 GS25가 판매하는 현지 즉석 조리 식품 매출 중 2위다.

당면과 각종 채소, 간장 등을 활용해 만드는 잡채 역시 간장 기반의 음식이 많은 베트남 식문화와 잘 맞아 즉석 조리 식품 매출 5위에 올라있다. GS25의 ‘한국매운라면’ 상품은 김치로 얼큰한 국물을 내고 어묵과 삶은 계란을 넣어 제공된다. 현지인과 베트남 거주 한국인에게 인기를 끌면서 매출 상위권(11위)이다.

GS25는 현지 매장을 35호점까지 확장하면서 매장 내 충분한 시식 공간을 확보하려 애썼다. 오토바이 이용고객이 많은 점을 감안해 ‘오토바이 드라이브 스루’ 매장도 운영 중이다. 오토바이를 탄 고객들은 내릴 필요 없이 길 쪽으로 난 창을 통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방콕=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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