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1시 30분 무렵. 서울 강남구 ‘당근마켓’ 본사 현관에 들어선 기자에게 김재현 대표(40)는 이렇게 말한 뒤 사라졌다.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현관 안쪽에는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고 각양각색의 슬리퍼도 있었다. 마룻바닥에 소파와 안락의자가 놓인 응접실이 있고 그 뒤로 스탠딩 책상들이 있었다. 사무실이 아니라 친구 집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동네 기반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당근마켓의 김재현 김용현(41) 공동대표는 ‘내 집 같은’ 회사를 꾸미고 싶었다고 했다.
“좋은 인재들이 대기업보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 스타트업에 들어오는 이유는 회사의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게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스타트업답게 성과만 낸다면 일하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목요일은 재택근무, 휴가일수 무제한 등 근무 규정이 파격적이다.
두 대표는 카카오에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97학번인 김용현 대표는 삼성물산과 네이버, 카카오를 거쳤다. 동서울대 정보통신공학과 98학번인 김재현 대표는 네이버를 다니다 쇼핑 정보 앱 ‘쿠폰모아’를 창업했고 이를 카카오가 인수하면서 두 사람은 직장 동료로 만났다.
동네 기반 서비스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53)이 눈독을 들인 사업 아이템이기도 하다. 특정 동네에 특화한 ‘타깃 서비스’가 성공하면 동네 광고시장이 온라인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근거리 위치 기반 서비스들이 나왔다 사라졌지만 성공한 건 ‘배달의 민족’ 정도다. 카카오도 위치 기반 비즈니스를 다양하게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당근마켓은 동네 기반 중고 거래 아이디어로 성공했다. 등록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기반으로 자신의 동네를 인증한 뒤 반경 6km 이내의 소비자에게 중고 물품을 팔 수 있다. 당근마켓은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마켓’의 줄임말이다. 김용현 대표는 “인접한 동네의 사용자를 묶었고, 산이나 강 등 직거래에 방해가 되는 지형지물이 있으면 그 너머의 동네는 제외했다”고 말했다.
두 대표는 카카오에 다닐 때 사내 중고 거래 온라인 게시판이 활발한 것을 보고 사업을 떠올렸다. 서로 신뢰가 있는 상태에서 물건을 확인하고 거래하다 보니 중고 거래가 활발한 점에 착안했다. 기존의 중고 거래 사이트들은 전국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집 가까운 곳에서 직접 만나 물건을 확인한 뒤 거래하고 싶은’ 수요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동네 기반이다 보니 지역별 특색이 뚜렷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제주에선 문어 낙지 갈치 등 당일 새벽 낚시로 잡았다는 생선들이 곧잘 올라온다. 서울 강남에선 중고 명품이, 신도시에선 육아용품이 많이 거래된다. 김용현 대표는 “최근엔 머신러닝 기능을 활용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용자가 육아용품을 많이 둘러봤다면 그 사람의 화면엔 육아용품들이 우선 뜨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동네 맞춤형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서비스가 발전하는 중이다.
2015년 출발한 당근마켓은 월 매출 2억2000만 원, 기업가치는 400억 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월 사용자는 250만 명 수준이다. 지난해 4월 57억 원 투자를 받은 데 이어 올여름엔 더 큰 규모의 투자가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재현 대표는 “가까운 동네 거래인 만큼 온라인으로 물건을 확인하고 택배로 주고받는 중고 마켓보다는 이용자 간 신뢰가 있고 소액 거래나 무료 나눔도 많다”며 “앞으로 제빵 클래스나 주말농장처럼 동네 주민끼리 삼삼오오 모일 수 있는 생활 서비스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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