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고 싶지만 노출되고 싶지는 않은 Z세대의 심리를 잘 간파해 이들에게 든든한 지지를 얻고 있는 오디오 플랫폼이 있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3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800만 건, 월 이용자 수(MAU) 130만 명에 달하는 스푼라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개설되는 방 개수는 3만 개. 피크타임인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 사이에는 3000∼4000개의 방이 열린다. 방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의 사람이 모여 BJ(방송자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을 나눈다.
비디오 시대가 열리며 라디오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주파수를 맞추고 DJ(디스크자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만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 불리며 양방형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는 Z세대는 한층 진화된 형태로 라디오 방송을 소비하고 있다. ‘오디오계의 유튜브’로 불리는 스푼라디오를 통해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방송에 만족하지 못하는 Z세대 청취자들은 스푼라디오라는 쌍방향 플랫폼을 통해 보다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즐기는 라디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74호(2019년 6월 1일자)에 실린 스푼라디오의 성장 스토리를 요약 정리했다.
○ 사용자 니즈 파악해 서비스로 구현
스푼라디오를 운영하는 마이쿤 창업자 최혁재 대표는 음성 녹음을 올려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라디오 방송처럼 플랫폼을 활용하는 사용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라이브 기능을 추가했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사용자 증가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1020세대의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누구보다도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일에 익숙한 세대였다. 특히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자기 채널을 운영하며 구독자를 늘려가고 싶은 욕구를 가진 이들에게 비주얼에 신경 쓰지 않고 목소리로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스푼라디오는 매력적인 대체재였다.
여기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BJ에게 금전적인 선물을 할 수 있는 ‘스푼 후원하기’ 기능이 더해졌다. 플랫폼에서 스푼을 구매한 후 방송 중 BJ에게 주는 기능이다. BJ는 이를 현금으로 교환해 수익을 취하면 된다.
“10, 20대들이 몇천 원씩 결제하는 게 무슨 수익 모델이냐” “라디오 듣다가 결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의구심이 안팎에 적지 않았지만 최 대표는 도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 바로 Z세대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Z세대는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자신이 잘 활용하는 서비스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 대표의 말이다.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결제 서비스가 시작된 첫 달, 유저들의 스푼 결제를 통해 200만 원의 매출이 기록됐다. 이후 결제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매일 약 1억 원씩 결제가 일어난다. 2018년 연매출 230억 원이 여기서 나왔다. 스푼으로 후원받는 기능이 추가되자 이에 연동해 BJ들의 수입도 늘기 시작했다. 현재 톱10 안에 들어가는 BJ들은 연간 억 단위 규모의 돈을 번다. 지난해 가장 많이 번 BJ는 4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 팀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 부여
최 대표는 데이터를 많이 본다. “데이터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데이터를 보면서 전략을 다듬고 수정한다. 유료 데이터 분석 툴도 많이 쓴다. 툴 값으로만 매달 수천만 원씩 나간다. 플랫폼을 통해 얻는 여러 수치를 다양한 잣대로 분석하고 파악해 보고 또 본다. AB 테스트도 매일 한다. 최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미친 듯이 한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말로 설명하지 말고 숫자를 가져오라고 요구한다”며 “사용자들의 행동과 특성, 결제 방식,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물론이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가 모두 데이터에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Z세대를 겨냥해야 하는 마케팅에 대표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예산 배정만 결정할 뿐 마케팅의 A부터 Z까지 마케팅 팀원들이 개인별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그 대신 마케팅 팀원들을 구성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경력이나 학력은 보지 않는다. 오로지 열정만 본다. 뽑힌 마케팅 직원들은 3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친다. 하루에 몇만 원 정도의 예산을 받아 직접 디지털 마케팅을 시도해 보도록 한다. 이들은 마케팅 문구나 형식, 기간 등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디지털 마케팅의 특성상 해당 마케팅을 통한 사용자 수 증감이나 스푼 결제 명세 등이 바로바로 체크된다. 실시간으로 성적표를 받아보는 셈이다. 3개월 수습 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한 팀원은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정직원이 된 마케팅팀 직원들에게는 보다 넓은 범위의 권한이 주어진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개인별로 맡는 채널만 정해져 있을 뿐 들어가는 문구와 노출 방식, 노출 기간, 타깃 설정, 수정 여부 및 방법 등은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다만 성과에 따라 배정받는 예산 규모가 달라질 뿐 아니라 성과급의 유무 및 금액도 달라지므로 상당한 책임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감하게 믿고 맡기는 경영은 성과 차별화의 핵심”이라며 “이런 경영으로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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