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의 연구 및 교육 정책이 세계 변화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세계의 유수 대학들은 일찌감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첨단 연구에 앞서가는 반면 우리나라 대학들은 반값 등록금 정책 등으로 재정여건이 갈수록 악화돼 연구와 교육 환경이 피폐해지고 있다. 종전에는 지방대의 문제 정도로 치부됐지만 이제는 수도권의 큰 대학들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기에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강사법을 앞두고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대폭 줄이는 졸속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새 제도의 혜택을 받는 일부 강사들의 신분 안정성은 높아지겠지만 대다수 강사들은 종전 수준의 대우는 커녕 아예 강사 시장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나마 취업에 유리하거나 연구개발(R&D) 분야 등 이공계 전공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시장 수요가 적은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은 그야말로 존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융복합 분야나 틈새시장을 찾아 생존을 모색하지만 해결책이 쉽지 않다. 사회적 가치재(價値財)의 의미가 큰 학문이어서 이런 시장 기능에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인문사회분야에 상당한 재정투자를 하고 있다. 영국은 정부연구위원회 예산의 9% 이상을, 미국은 국립과학재단과 국립인문기금 연구지원 예산의 7%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가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를 국립학술연구센터(CNRS) 소속으로 고용한 후 대학 또는 연구소에 파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본 4년 계약에 평가를 거쳐 재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부가 2007년 인문학 위기 선언 이후 인문한국(HK) 사업 등을 통해 관심을 쏟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인문사회과학 분야 연구지원은 정부 R&D 예산의 1.5%(3009억 원)에 불과하다. 최근 5년간 교육부 학술·연구지원사업의 연평균 증가율을 살펴봐도 이공계는 10.9%인 데 비해 인문사회분야는 0.3%로 35배나 차이가 난다. 인문사회분야에 엄청난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실핏줄 같은 생태계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4월 자립 가능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구축을 위한 ‘인문사회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고사 위기의 대학과 연구자들의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문사회·기초학문 분야 연구자들에게 대학이 제대로 된 연구환경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비전임 연구자나 경력단절 연구자들에게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우선 학문후속세대 지원 사업인 시간강사 연구지원 사업은 강사법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기 전까지 강사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올해 추경예산에 긴급 편성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은 인문사회분야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학계가 중심이 되어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중장기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학술연구 지원은 멀리 내다보고 꾸준히 밀어줘야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