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에 이어 석유제품 생산까지 부진에 빠져 제조업 재고가 20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기업이 재고 처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산과 투자는 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은 28일 내놓은 ‘5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5% 줄었고, 설비투자도 8.2% 감소했다.
● 창고에 쌓여가는 물건
생산과 투자는 3월과 4월 연속 상승하며 경기 회복 기대감을 높였지만 3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소비 추이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지난달 0.9% 증가했다.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동반 부진에 빠진 것은 핵심 산업분야인 제조업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물품 출하 대비 재고 비율을 나타내는 제조업 재고율은 지난달 118.5%로 외환 위기 당시인 1998년 9월(122.9%) 이후 가장 높았다. 재고율 상승은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여가는 물건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떨어지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으니 공장 가동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 5월 74.4%이던 제조업 가동률은 지난달 71.7%로 떨어졌다. 올해 2월 70.3%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은 이후 71~72%선에 머룰고 있다.
제조업 부진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감소가 광공업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특히 석유정제(―14%), 반도체(―0.6%)의 생산 감소 영향이 컸다고 했다. 석유정제는 재고율도 14.6% 늘었다.
이는 글로벌 호황이 끝난 반도체에 이어 또 다른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인 석유 제품에도 이상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유사 재고가 증가한 건 시황 악화와 관련이 있다. 정유사 관계자는 “시황이 안 좋은 건 그만큼 수요가 적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이달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3달러 수준으로, 전년 같은 달 평균마진(4.8달러) 대비 38% 낮다.
● 경기동행지수 14개월 만에 반등
제조업체들이 재고 처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물건은 쌓이는데 공장이 돌지 않으면 기업으로선 새로운 설비를 들여놓기 어렵다. 이런 흐름은 전형적으로 경기 하강기에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달 설비투자 감소(―8.2%)는 반도체 제조용 기계 수입이 19%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분기(1~3월) 지표가 워낙 좋지 않아서 2분기(4~6월)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여전히 다수의 지표가 좋지 않은 걸 봤을 때 한국 경제가 경기반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5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이 수치가 상승한 것은 14개월 만이다. 다만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해주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달에 전월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소비를 빼고 생산과 투자가 부진했지만 이는 직전 2개월 동안 상승세를 보인데 따른 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선행지수가 하락해 향후 전망이 좋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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