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對韓수출 규제’ 경제보복]정부 뒤늦게 전방위 대책 추진
지난3월 아소부총리 보복 시사… 주일대사관은 발표때까지 감감
대법 판결후 시나리오별 준비 없고 日과 최소한 협의채널도 유지 못해
전문가 “국제법적 큰 문제없는 제재… ‘한국에 불공정한 대우’ 강조해야”
지하주차장 통해 외교부 청사 들어가는 日대사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 발표와 관련해 이날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로 초치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운데)가 취재진을 피해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전격적인 수출 규제 조치가 나오자 한국 정부는 외교부와 경제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 전방위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직후부터 일본이 보복을 경고해 왔다는 점에서 사전 대처 과정이 아쉽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정부가 1일 내놓은 실질적인 대응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외에는 당장 위협적인 대목이 없다. WTO 제소 역시 최종 결론까지 2, 3년이 걸리는 데다 법리적으로 한국이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이 이번에 문제가 된 3개 소재를 안보상의 이유로 수출 제한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할 경우 WTO가 이를 인정할 수도 있다. 백색국가 리스트 제외 조치도 한국을 불공정하게 차별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한국에 줬던 특별한 혜택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일본이 철저한 준비를 통해 국제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이 기존보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적극 강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간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도상연습’을 충실히 했어야 하고, 일본과 최소한의 협의 채널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일본은 3월 아소 다로 부총리가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한 데 이어 100여 개의 제재안을 마련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일본이 상대적으로 손쉬운 경제 제재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이 예견돼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달 30일 일본 언론들이 보복 조치 예고 기사를 내놓을 때까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채 허를 찔린 듯한 반응이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상황 파악을 못 한 채 “주일대사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일본과의 접점인 주일대사관은 이날 일본 정부가 실제로 관련 내용을 공식 발표할지 최종 확인을 못했다. 그저 “(언론 예고 기사가 난 날이) 일요일이어서 확인이 쉽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수출 규제를 가할 때는 상대방 국가와 비공식적 협의를 하기도 하는데 한일 교섭 채널이 끊기다시피 한 까닭에 우리가 기습공격을 당한 꼴이 됐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징용배상과 관련해 “일본의 사과가 먼저”라는 태도만 유지하는 동안 일본은 예고편까지 보여주면서 한국의 급소를 노릴 칼을 갈고 있던 셈이다. 일각에선 청와대의 방침이 완고하다 보니 실무 부처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1일 “일본 정부에 심한 유감을 표시한다”면서도 “심각한 위기가 닥쳤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는 여전히 민족적 감상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일본의 조치는) 한일관계를 해치는 졸렬한 보복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충분히 예견이 가능했는데 우리 정부는 그동안 어떤 예방 조치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외교가 실종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대응과 관련해 박명섭 성균관대 글로벌 경영학과 교수는 “수출 규제와 관련해 일본의 혼네(속마음)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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