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최근 들어 어른들이 어린이 상품을 구매하는 키덜트(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소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도 이를 노린 판촉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키덜트 소비가 늘어난 원인은 무엇일까요?
A. 11년 동안 이어져온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가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요. 시리즈는 끝났지만 어벤져스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습니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등장인물들을 실제 모습처럼 정교한 인형으로 제작한 피규어 매출도 급증했는데요. ‘아이언맨’의 모습을 축소한 제품의 경우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가는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품절될 만큼 인기가 대단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피규어의 주요 소비층이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사실입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런 어른들을 ‘키덜트족’이라 부릅니다. 어린이가 되고 싶어 하는 환상을 가진 어른을 의미하는 말인데, 주로 30, 40대 성인들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 추억의 놀이를 다시 찾으려는 문화현상을 설명할 때 쓰입니다.
키덜트족의 소비 확대 현상은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라는 경제용어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밴드왜건 효과는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뜻합니다. 퍼레이드의 맨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樂隊車·밴드왜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효과를 내는 데에서 유래했습니다.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상이죠. 사람들이 밴드왜건을 보고 아무런 이유 없이 따라가는 것처럼 ‘남이 사니까 나도 산다’는 심리로 물건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기업들은 상점 앞에 전략적으로 줄을 세우거나 오프라인 매장에 고객들이 가득 찬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해 밴드왜건 효과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홍보 전략은 소비자의 의사결정이 타인의 소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소비자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는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물품을 소비하면서 서로 교류하고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열렬히 악대차의 뒤를 따르고 기업들은 이를 이용해 소비를 부추깁니다. 특히 SNS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전국으로 입소문이 퍼질 수 있게 되면서 경험의 공유가 쉬워졌고 유행도 순식간에 퍼져 나갑니다. 백화점 앞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건담’ 피규어를 사려고 성인들이 긴 줄로 늘어선 모습이나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이 SNS에 어벤져스 캐릭터를 모아둔 사진을 보면서 소비자들은 호기심이 생기고 어느새 구매에 동참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키덜트 상품군은 대부분 추억을 소비하는 상품이라는 공통적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달라진 소비자의 소비행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키덜트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현실적인 쓸모보다는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옷이나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처럼 상품의 사용 가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옛 만화와 게임 속 캐릭터 인형을 구매함으로써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감을 채우고자 합니다. 과거엔 가격 대비 효용 등을 따지는 ‘가성비’가 우세했다면 최근엔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 즉 ‘가심비’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소비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는 것인데요. 상품의 가격이나 객관적 정보보다 주관적 마음의 영역이 중시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키덜트족의 소비행태는 합리적일까요? 일반적으로 합리적 소비란 소비자가 상품의 가격과 품질 등을 고려해 그 상품을 소비할 때 얻게 되는 만족을 극대화하는 소비행위를 가리킵니다.
키덜트족의 소비는 전통적 경제학 이론의 전제가 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적 인간), 즉 정서나 감정을 배제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심리와 감성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키덜트 문화는 경제 현상을 설명할 때 주관적 요소의 중요성이 점차 인정되는 최근의 흐름을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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