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진출 20년… 스타벅스가 바꾼 한국 커피문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3일 03시 00분


‘밥보다 비싼’ 커피집서 스세권 문화아지트로

“무슨 커피가 이렇게 비싸고 써! (메뉴) 발음도 어렵고. 그냥 환불해주세요.”

미국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국내에 처음 진출한 1999년. 1호 점포인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점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객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싸고 달달한’ 자판기 믹스커피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커피의 맛과 가격은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2500원으로 짜장면 한 그릇 값과 비슷했다. 뜨거운 커피와 아이스커피가 선택의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프라푸치노, 라테 같은 생경한 이름의 메뉴는 발음조차 쉽지 않았다. 1999년 브랜드 론칭 때부터 현재까지 스타벅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운경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운영팀장(42)은 “당시에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맛을 설명하고 메뉴를 추천해야 했다”며 “아메리카노처럼 쓴 커피를 주문한 고객 가운데 일부는 환불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론칭 초기 스타벅스는 ‘과소비의 상징’으로 불렸다. 2006년 명품 등 과소비를 일삼는 여성을 뜻하는 ‘된장녀’라는 신조어 뒤에는 항상 스타벅스가 따라붙었다. 150∼200원짜리 자판기 믹스커피를 마시던 당시를 생각하면 논란이 될 법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국내 주요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 가격은 대부분 4000원을 호가한다. 전국 스타벅스 매장은 1200개를 훌쩍 넘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의 매출은 2016년 1조 원을 넘어섰고 곧 2조 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든 여성에게 ‘된장녀’라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스타벅스가 있는 곳을 역세권에 빗댄 ‘스세권’이란 말까지 나왔다.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문화공간이 된 카페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더종로점에서 색소폰 연주단이 공연을
하는 모습. 더종로점에선 매월 1회 고객 대상 문화 공연을 열고 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더종로점에서 색소폰 연주단이 공연을 하는 모습. 더종로점에선 매월 1회 고객 대상 문화 공연을 열고 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스타벅스는 1999년 7월 신세계와 합작해 국내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커피시장은 봉지 형태의 ‘믹스커피’가 꽉 잡고 있었다. 지금은 일상이 됐지만 길거리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든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식사 후에는 대부분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마셨다. 당시 커피전문점이라고는 스타벅스보다 1년 앞서 문을 연 할리스커피 정도였다. 지금은 전국에 1290개 매장이 있지만 론칭 이듬해인 2000년 스타벅스의 매장 개수는 10곳에 불과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관계자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고객들과 호기심에 찾아온 손님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반신반의로 매장을 찾은 고객들을 사로잡은 건 분위기였다.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새로웠지만 문화·휴식 공간을 표방한 스타벅스의 전략은 고객들을 카페로 모이게 했다. 특히 고객에게 눈치를 주지 않는 카페 분위기는 국내 소비자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 김유선 씨(43)는 “몇 잔을 주문하든 몇 시간을 앉아 있든 눈치를 주지 않는 게 기존 카페들과 달랐던 것 같다”면서 “편하고 익숙한 공간으로 느껴지면서 더 자주 찾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카페에서 회의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카공족’도 이 같은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Seiren)’이 새겨진 스타벅스 용기도 고객을 유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테이크아웃 커피 문화가 퍼지면서 2000년 초중반 길거리에는 커피를 든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당시 스타벅스의 충성 고객은 이 초록색 로고를 명품 브랜드처럼 생각하며 일부러 로고가 보이도록 컵을 들고 다녔다. 직장인 이현지 씨(31)는 “가방이나 옷에 붙은 브랜드 로고처럼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새롭고 좋았다”면서 “커피뿐 아니라 텀블러, 비치타월 등 관련 상품을 사는 것도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점포 100곳을 넘어선 스타벅스는 거의 매년 100개씩 점포가 늘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사람들이 ‘밥보다 비싼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손에 든 건 이즈음부터다. 실제 스타벅스 론칭 이후 엔제리너스(2000년), 이디야커피(2001년), 파스쿠찌(2002년), 투썸플레이스(2002년), 카페베네(2008년) 등 주요 커피 전문점이 잇달아 생겨났다.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면서 동서식품, 남양유업 등 믹스커피 제조업체들도 원두커피를 내놓기 시작했다. 2015년 세븐일레븐을 시작으로 편의점에서도 직접 내린 커피를 파는 등 스타벅스 열풍 이후 국내 커피 소비문화가 완전히 바뀌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화공간을 표방한 스타벅스에 있는 것만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 된 것으로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았다”면서 “믹스커피와 다방문화에 익숙했던 국내 소비자들에게 스타벅스의 고급화 전략이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 교수는 “스타벅스 이전 젊은층 위주였던 카페가 남녀노소가 즐기는 문화공간이 된 것은 스타벅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면서 “국내 커피 산업에 불을 붙여 토종 브랜드가 나올 수 있도록 시장을 키운 것도 스타벅스”라고 말했다.

○ 카페서 쇼핑하고 앱으로 주문하고

2017년 말 스타벅스 서울 종로구 더종로점 앞에는 새벽 5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스타벅스가 내놓은 한정판 다이어리를 사기 위해 새벽잠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가격이 개당 2만 원에 달했지만 지방에서 상경한 고객까지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텀블러와 커피잔을 사고 다이어리 등 다양한 굿즈(goods)를 구경하는 ‘카페 쇼핑’ 문화는 스타벅스의 공이 컸다. 1999년 론칭 초기부터 스타벅스는 카페에 브랜드 로고를 넣은 텀블러, 커피잔 등을 팔았다. 2004년부터는 매년 새해 다이어리를 선보였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매년 매진 기록을 이어갔고 일부는 온라인에서 웃돈까지 주며 거래가 됐다. 해외여행에서 로컬 기념품이 아닌 스타벅스가 제작한 나라별 머그잔을 사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카페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상품들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다른 커피전문점들도 카페 안에 다양한 상품들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2014년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사이렌오더’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문화도 확산됐다. 기존에는 카페 안에서 줄을 서서 차례대로 주문을 했지만 앱 주문이 활성화되면서 미리 커피를 주문하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가 낸 이 아이디어는 미국 본사에 역수출됐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앞으로 사이렌오더, 드라이브스루 같은 첨단 기술을 접목해 고객 편의성을 더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관계자는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스타벅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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