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 씨(36)는 최근 두루마리 휴지 4박스, 김 3박스 등 각종 생필품을 평소보다 7만 원어치 더 구매해 집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연수구가 이달부터 카드형 지역화폐 ‘연수e음’을 발행하며 이달만 이용액의 11%를 환급해주기 때문. 최 씨는 “할인율이 높을 때 미리 사둬야 한다”며 “환급받은 돈을 생각하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카페에는 주부들이 환급받은 액수를 자랑하듯 인증샷을 찍어 올리고 있다. 한 수학학원 관계자는 “이번 달에 학부모들이 2, 3개월 수강료를 미리 결제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시는 구청들의 호응에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지역화폐 발행을 늘릴 것을 검토 중이다. 》
인천은 물론이고 경기, 전북, 경북 등 전국 광역·기초지자체에서 지역화폐 발행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전국 지자체의 올해 발행 예정액이 2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3714억 원)의 6.2배에 이른다. 정부는 당초 2조 원만 풀려 했지만 6월 지자체 수요조사에서 지원 요청이 늘어나 이달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3000억 원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자치단체장들이 직접 나서 “자영업자를 살리겠다” “할인 폭을 늘리겠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발행 계획을 밝힌 지자체 수는 올 1월 124곳이었지만 6월 말 177곳으로 늘었다. ○ “지역경제 살아나나” 기대감
지역화폐는 기존에 지역사랑상품권이란 형태로 지자체가 재정을 투입해 발행했다. 올해부터는 중앙정부가 자영업자 살리기 일환으로 지자체에 지역화폐 발행비용의 4%를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여기에 자체 재원으로 발행비용의 2∼6%를 추가로 보태 지역민에게 10% 안팎의 할인 혜택을 준다. 할인율이 11%이면 100만 원짜리 지역화폐를 사고 11만 원을 돌려받는 식이다. 화폐 형태도 종이형, 카드형, 모바일형 등으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지역화폐의 취지는 물론 지역경제의 활성화다. 해당 지역 대형마트를 제외한 슈퍼마켓, 학원 등 골목 가게에서 쓸 수 있다. 지역 상권에선 이를 대체로 반기고 있다.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천이 지역화폐의 높은 할인율과 시민 호응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으니 수돗물 사태 등 각종 사고로 가라앉았던 지역 분위기가 호전됐다”고 말했다.
산업·고용위기지역인 전북 군산에서도 상인들의 기대가 크다. 복태만 군산시상인연합회장은 “요즘 결제수단의 80%가량이 지역화폐다. 지역화폐 발행 뒤 매출이 35%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군산에서 16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56)는 “매출이 눈에 띄게 늘진 않았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설명했다.
물론 지역화폐의 효과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보석집을 운영하는 유모 씨(50)는 “매출증가 효과는 전혀 없다”며 “정부가 표를 의식해서 선심성으로 돈을 푼다”고 비판했다.
자영업자들은 종이형 상품권의 경우 한번 쓰면 현금화돼버려 돈이 지역 안에서 지속적으로 돌기 힘들다고 봤다. 김진이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역화폐의 발행 규모 자체보다는 지역 내에서 얼마나 잘 순환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는지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3년간 종이형 지역화폐를 발행하다가 올해 중단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830억 원을 풀었지만 절반이 약간 넘는 569억 원만 판매되는 데 그쳤다. ○ 효과 따져 발행계획 세워야
지자체들이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발행을 늘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천에서는 벌써 재원이 부족해 할인율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화폐를 한꺼번에 거액의 현금으로 바꾸는 ‘현금깡’도 여전하다.
도한영 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유통이 잘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원금을 늘리니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달라고 하고 있다”며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2조 원이나 넘게 돈을 푸는 건 다분히 정치적인 프로젝트”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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