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전 주일대사 “특사는 수단…중요한 것은 해결 방안”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7월 20일 17시 40분


연쇄 인터뷰 - 신각수 전 주일대사
“韓 정부가 포스코 등과 함께 강제징용 해법 찾으면 자연스레 수출 규제 풀릴 것”

신각수 전 주일대사 [홍중식 기자]
신각수 전 주일대사 [홍중식 기자]
정부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에 대응하고자 연일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초점은 주로 핵심 소재와 부품 분야 육성에 맞춰져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수입선 다변화와 대체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를 불러온 본질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는 여전히 마땅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대사는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수출규제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며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 모색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한일 현안으로 부상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의 수출규제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 우리 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과 관련 있어요.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로 일본 기업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지난해부터 공언해왔는데, 강제징용 재판에서 승소한 원고 측이 일본 기업의 주식과 특허권을 압류하고 이를 연말이나 내년 초 현금화하는 절차에 들어갔거든요.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로 일본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할 것을 우려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자 그런 조치를 취한 거죠. 만약 일본 기업의 주식과 특허권이 현금화돼 배상금으로 지급되면 일본은 더 많은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조치가 추가로 취해질 수 있다고 봅니까.

“금융과 비자 문제, 농수산 검역과 관세 등 다방면에서 후속 조치가 취해질 수 있어요. 문제는 일본이 그런 보복 조치를 단행하면 우리 정부도 맞대응을 안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수준이지만, 일본이 1100여 개에 달하는 전략물자를 포괄허가제에서 개별허가제로 바꿀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우리는 일본의 부품과 소재를 들여와 중간재를 만든 뒤 중국과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해 무역흑자를 기록해왔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부품과 소재를 들여오는 데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이번에 수출규제 대상에 오른 3개 품목 가운데 불화수소, 특히 고순도 에칭가스의 경우 삼성이 새로 진출하려는 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메모리반도체인 D램은 미리 생산해놓고 파는 것이지만, 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은 필요에 따라 주문 생산하는 체제여서 주문자의 생산 요구 시점에 맞춰 제품을 제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조 과정에 꼭 필요한 핵심 소재가 수출규제에 묶여 있으면 공급이 불안정해져 사업 자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메모리는 물론 금융, 농수산 연쇄 타격 우려

일본이 포괄적 수출허가제를 개별허가제로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 전 대사는 “개별허가제로 바뀌면 허가 만료 시점인 90일이 다 돼서야 수출 허가를 내줘 그만큼 공급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90일이 다 돼서 만약 ‘서류가 미비하니 보완하라’고 하면 3개월을 넘겨 4개월, 5개월 뒤에야 필요한 소재를 공급받는 일도 생길 수 있다”며 “부품과 소재의 공급 불안정성은 제품의 생산 차질로 이어져 사업 자체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 산업에 타격을 주면 그로 인해 반일 감정이 더욱 고조될 텐데요.

“감정이 상승해 한번 폭발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 빠지기 전 관리를 잘 해나가야죠. 결국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게 중요합니다.”

“외교 문제를 경제제재로 연결시켰다”
7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자클럽 주최 ‘당수공개토론회’.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운데)는 대(對)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 부품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왼쪽).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7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한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 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7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기자클럽 주최 ‘당수공개토론회’.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운데)는 대(對)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 부품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왼쪽).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7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한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 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면담하고 있다. [뉴시스]

본질적인 문제라면?

“일본은 외교 사안에 대해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한국을 통해 북에 전략물자가 흘러들어갔다’ ‘신뢰가 무너졌다’ ‘3년 동안 협의가 없었다’ 등 다양한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일본이 뭐라 하든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 든 본질적 이유는 강제징용 문제 때문입니다. 근본 원인이 된 강제징용 문제에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수출규제 문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면 협상이 가능하겠지만, 수출규제라는 우회적 방법으로 압박해온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해법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형식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일본 야당과 언론은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가 연계돼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만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죠.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외교 문제를 경제제재로 연결시켰다는 점을 인정하는 순간 세계무역기구(WTO) 룰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출규제) 명분도 빈약하지만 룰까지 위배하는 것이라 그 연관성을 부인하는 거죠. 자유무역을 주창한 일본의 근본 입장에 저촉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 같은 일본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WTO에 제소해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나가야죠.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 가운데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속합니다. 자유무역이라는 가치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일본이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권익을 침해했는데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외교 문제를 경제 문제, 통상 문제로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죠. 다만 WTO 제소가 문제 해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강제징용 문제에서 해법을 찾는 일이고, 그다음에 한일 양국 간 수출규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WTO 제소 등을 통해 관리해가야 합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국론을 통일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차분하고 냉정하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 전 대사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우리 정부가 54년간 일관되게 유지해온 입장에 반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한마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지난해 10월 이후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한일협정과 대법원 판결 모순 풀어야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동아DB]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협정 문서에 서명하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 [동아DB]

“민주국가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 차원에서 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가 54년간 견지해온 입장과 다른 판결이 법원에서 나왔을 때 그 모순을 해소하고자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 합니다. 우리 내부에서야 입법, 사법, 행정부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겠지만, 국가 대 국가가 맺은 협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 대 국가가 맺은 조약과 대법원 판결이 배치될 때 정부가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이냐에 대해 타협점을 찾고 대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한 뒤 상대국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신 전 대사는 “지나간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라며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지 문제의 본질에 충실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정부가 한일협정과 대법원 판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타협점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게 좋다고 봅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니 강제징용으로 이익을 본 일본 기업들이 강제징용 배상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금을 이미 지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은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배상에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했지만, 모두 준 것은 아니고 그 돈을 경제개발의 종잣돈으로 사용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포스코를 세웠죠. 그런 점에서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성장한 한국도로공사나 포스코 등 우리 기업들도 강제징용 배상의 한 주체로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배상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우리 정부가 배상에 참여함으로써 한일협정의 정신을 지키며, 실질적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강제징용 배상 재판에서 이긴 원고 측을 보상해주는 것이 외교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지 않을까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들어갔으니 수긍할 테고, 우리는 일본 기업이 배상에 참여했으니 대법원 판결을 존중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만, 우리 국민의 대일 감정을 고려할 때 정부가 그 같은 타협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국민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거든요.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은 몇 번에 걸쳐 사과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1993년 고노 담화가 있었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도 있었죠. 문안을 읽어보면 일본이 사과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는 역대 총리들이 서한을 보내 직접 사과하기도 했고요. 총리가 서한을 보내고 담화를 발표해도 우리 국민은 일본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진짜 참회해 사과한 것인지 내부에 들어가 보기 전에는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지만 총리 명의로 서한을 보내고 몇 차례 총리가 담화를 발표했다면 적정선에서 사과 논쟁은 끝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좀 더 높은 수준의 사과를 받아내려고 과거사를 놓고 싸우는 사이 현재와 미래의 우리 국익을 놓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베트남도 전쟁 치른 미국과 손잡았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홍중식 기자]
신각수 전 주일대사 [홍중식 기자]

신 전 대사는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네이팜탄과 고엽제 등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베트남이 왜 미국과 화해하고 경제협력에 나서겠느냐”며 “그것이 베트남 국익을 지키고 키우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인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 역사의 교훈으로 삼도록 하는 것이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는 길인데, 그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최소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교과서를 제작해 우리 입장이 반영된 교과서로 일본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한국 국민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일본 후세가 알도록 일본 교과서에 우리 입장이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일본이 자기들 입맛에 맞춘 교과서로만 학생들을 가르치게 내버려둔다면 후세 일본인들은 식민지배가 아무 문제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개연성이 있습니다.”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수출규제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기대도 있습니다.

“참의원 선거 때문에 시점을 앞당겼을 수는 있지만,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찾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그냥 한번 칼을 뽑은 것이 아니라, 과거사와 관련해 누적돼온 불만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맞물려 수출규제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만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일본 정부의 입장까지 배려하면서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요.

“일본 정부를 배려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본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해야 우리가 내놓을 해법을 검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달리 파악하면 처방도 다르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일본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협상도 가능합니다.”

특사를 보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사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수단입니다. 상대방과 협의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만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 채널은 힘이 빠진 상태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청와대와 일본의 총리관저를 이어줄 특사가 간다면 문제 해결이 좀 더 용이할 수 있을 겁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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