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일본 정부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강행하자 주요 기업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수출 지연 품목이 있는지 사태 파악에 나섰다. 지난달부터 비상경영에 들어간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당장은 필수 부품들에 재고 여유가 있지만 일본이 어떤 품목을 찍어 수출을 지연시킬지 알 수 없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7, 8월에 구매팀은 휴가도 없이 일본산 부품 현황과 대체 여부, 재고 확보에 주력해 왔다”며 “재고를 가급적 3개월 치 이상 확보해 뒀지만 일본이 특정 품목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가할 수 있고 수출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은 지난달부터 구매팀과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협력사의 일본 부품 리스트를 만들고 재고와 대체 공급처 확보에 주력해 왔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주문에 따라 전사적으로 1∼4차 협력사까지 일본산 부품에 대해 90일 치 이상의 재고를 확보한 상태다. SK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 LG디스플레이도 어느 정도 대비가 됐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일본 정부가 언제든지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사용처를 의심해 개별 허가로 수출을 지연시킬 수 있는 ‘캐치올 통제’ 카드도 꺼낼 수 있다.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인 김명환 사장은 이날 한 행사장에서 “파우치필름을 수입하는 일본 DNP와 쇼와덴코는 ICP라 원칙대로 하면 (수입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일본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LG화학은 협력사인 율촌화학 제품 테스트 등 소재 기업 다변화에 나선 상태다. 다른 주요 기업도 소재 다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금 여력이 달리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상황이 달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산 기계와 부품을 수입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A사 대표는 “자금 형편상 재고를 충분히 비축하기 어려운 데다 주문 후 제작하는 기계부품은 미리 재고 확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반도체 설계 전문 팹리스 중소사인 B사 대표는 이미 납기를 2개월 정도 어긴 상황이다. 이 회사 대표는 “우리 회사가 위탁 생산을 맡긴 업체가 수출 규제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고객에게 납품을 제때 못하고 있다. 위탁 생산 업체들이 리스크가 높아졌다며 가격을 올릴까 봐 걱정되는 한편 우리 고객사들엔 주문을 끊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일본 수출 규제 조치에 별도의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영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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