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현지 시간) 미국 국채시장에서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불거진 지 3주일 만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 고용시장이 안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진단이 많았다. 핵심 성장동력인 제조업에서 경고음이 울리면서 불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한미 제조업서 동시 경고음
4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는 국내 500대 기업 중 반기보고서를 제출하고 가동률을 공시한 143개 제조기업의 상반기(1∼6월) 평균 가동률(생산능력 대비 실적)이 78.8%로 지난해 같은 기간(80.97%)보다 2.17%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정보기술(IT)·전기전자 분야 기업의 가동률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지난해 상반기 87.54%에서 올해 78.68%로 떨어졌다. 이어 석유화학(―3.84%포인트), 철강(―2.6%포인트), 식음료(―0.74%포인트) 순이었다. 반면 제약, 건자재, 생활용품,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조선·기계·설비 분야의 가동률은 소폭 올랐다.
공장 가동률만이 아니라 제조업체들의 생산능력 자체도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달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년 전보다 1.6% 하락했다. 생산능력지수는 사업체가 정상적인 조업환경(설비, 인력, 조업시간 등)에서 생산할 수 있는 최대 생산 가능량을 지수화한 것이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1년 이후 가장 하락 폭이 컸다.
세계 경제를 떠받쳐온 미국에서도 경고음이 나왔다. 3일(현지 시간) 미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1로 7월(51.2)보다 2.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시장 예상치(51)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 수치가 50 밑으로 떨어진 건 2016년 8월(49.6) 이후 3년 만이다.
PMI는 제조업 경기 확장과 수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PMI가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 국면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 공급관리협회는 8월 PMI가 50 밑으로 떨어지면서 35개월간 이어진 미 제조업의 확장 국면이 끝났다고 해석했다. 티머시 피오어 ISM 제조업경기 조사 위원회 의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많은 응답자들이 제조업 활동 부진의 원인으로 세계 무역 둔화를 지적했다”고 했다. 이날 정보제공업체 IHS 마킷이 발표한 8월 미 제조업 PMI 최종치 역시 50.3으로 10년 만에 가장 낮았다. ○ 경기 하락 국면서 미중분쟁이 불확실성 증폭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하락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이 교역을 위축시키고 불확실성을 키워 가속도를 붙였다고 분석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뚜렷한 성장동력 없이 버텨오다 2016년부터 일시적 투자 증가로 반짝 반등했지만 소비가 뒷받침되지 않아 지속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 등이 겹치면서 수출에 직접 영향을 받는 제조업부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 일본 독일 등의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제조업 엔진마저 꺼지면 세계 경제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무역 둔화를 이유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지난해 3.6%에서 올해 3.2%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기 사이클만의 문제라면 몰라도 무역분쟁이라는 정치적 이슈가 얽혀 있어서 글로벌 제조업 불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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