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5년 전 합의 깼다” 거론에 양보 모르는 반격과 확전 태세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10월 19일 17시 54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 3차전
SK이노베이션 “2014년 분쟁 종결 합의했는데 또 제소” vs LG화학 “엄연히 다른 특허”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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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및 특허 관련 분쟁이 3차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분쟁의 쟁점은 리튬이온배터리의 분리막 특허다. 해당 특허 분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이미 국내 법원에서 특허 침해를 두고 다툰 사례가 있다. 양사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2014년 더는 이 특허를 두고 소송을 벌이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올해 9월 26일 LG화학은 일본 도레이사(社)와 공동으로 다시 이 특허를 문제 삼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과 SK미국 법인을 ‘특허 침해’로 제소한 것. LG화학은 2015년 해당 특허권의 일부를 도레이에 양도했다.

LG화학 측은 “특허는 속지주의라 미국에서 제소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특허 범위도 달라 사실상 다른 특허나 마찬가지라는 것.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합의서에 있는 ‘국내외에서 문제 삼지 않겠다’는 조항을 근거로 반격에 나섰다. 미국 특허도 국내 특허를 준용해 취득한 것인 만큼 LG화학이 합의를 어기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주장이다.

소송하지 않기로 vs 엄연히 다른 특허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출한 소장의 일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한 특허 내용이 언급돼 있다.
LG화학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출한 소장의 일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한 특허 내용이 언급돼 있다.

문제가 된 사안은 2005년 LG화학이 취득한 특허로 ‘유/무기 복합 다공성 분리막 및 이를 이용한 전기 화학 소자’에 관한 내용이다(특허등록번호 제775310호). 쉽게 설명하자면 리튬이온배터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극자와 음극자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필요하다. 이 분리막이 떨어져 양쪽이 섞이면 화재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분리막을 견고하게 만드는 기술에 관한 특허다.

2011년 처음 특허분쟁이 일어났을 때 SK이노베이션 측은 기존 특허와는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분리막과 보호재를 접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 하지만 LG화학 측은 이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이 유사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LG화학이 패소했다. 대법원에서는 항소심 결과가 파기환송되는 등 분쟁이 길어졌다. 이에 2014년 10월 29일 양사는 합의를 위해 만났다. 당시 합의서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각 사의 장기적 성장 및 발전을 위하여 해당 특허 관련 소송 분쟁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 제4조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대상 특허와 관련하여 향후 직접 또는 개별 회사를 통하여 국내, 국외에서 상호간에 특허침해금지와 손해배상의 청구 또는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 조항 때문에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이 합의를 깨고 다시 소송을 걸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LG화학은 엄연히 다른 소송이라고 반박했다. LG화학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쟁송하지 않겠다는 특허와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특허는 다르다. 당시 양사가 합의한 대상 특허는 한국 특허등록번호 제775310호라는 특정 번호에 관한 것이다. 합의서 어디에도 제775310호 특허에 대응하는 해외 특허까지 포함한다는 문구는 없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두 특허가 사실상 같은 특허라고 주장한다. LG화학은 특허 협력 조약(Patent Co-operation Treaty·PCT)을 통해 미국 특허를 받았다. 이는 신기술을 발명한 사람 혹은 회사가 여러 국가에서 특허 출원을 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거리나 시차 때문에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한 국가에 우선권을 등록하고 나면 다른 국가에서도 해당 출원을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2004년 12월 22일 LG화학은 ‘KR10-2004-0110400’ ‘KR10-2004-0110402’ 등 2개의 특허 우선권을 한국 특허청에 등록했다. 이 두 우선권을 합쳐 출원한 특허가 문제의 제775310호 특허. 2009년 4월 30일 LG화학이 출원한 미국 특허의 단서가 된 우선권은 제775310호 특허와 같았다. 기술 개발에 참여한 인원의 명단과 기술을 설명한 도면도 양국 특허가 동일했다.

둘 싸움에 他國만 어부지리 vs 어차피 기업은 이익집단

SK이노베이션 측은 “한국 특허로는 해외에서 소송할 수도, 할 이유도 없다”며 LG화학의 합의 위반을 거듭 주장했다. 반면 LG화학 측은 “특허는 속지주의를 따르기에 같은 기술이라도 출원한 나라에 따라 권리 범위가 달라진다. 합의서는 양사가 신뢰를 기반으로 명문화한 하나의 약속이다. 당사는 과거에도 그래왔듯 현재도 합의서 내용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소송은 과거에 합의한 내용과 무관하다. 이에 관한 법률적 검토도 마쳤다. 만약 SK이노베이션 측이 이 소송으로 우리가 정말 합의를 어겼다고 생각한다면 추후 법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소송이 LG화학 측의 발목 잡기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LG화학이 분리막 기술이 필요한 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분리막 사업을 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2011년까지 LG화학은 분리막 필요량의 대부분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구매했다. 하지만 2011년 특허 분쟁 이후 해당 특허를 도레이에 양도, 필요 물량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LG화학은 “이와 관련된 사업은 전혀 다른 사업이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LG화학이 이번에 승소한다 해도 특허료를 받을 뿐, 시장점유율 등 사업적 측면에서 이익을 보기는 어렵다. 양사가 변호사 비용으로 지출하는 돈만 매달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상 특허료를 받아도 LG화학이 실질적 이득을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소송을 당한 SK이노베이션 측은 수주에 제한이 생긴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기술특허 관련 소송이 생기면 큰 수주는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소송 결과에 따라 제품 리콜의 위험이 있어, 소송에 휘말린 업체의 제품을 쓰겠다고 나서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번 소송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해외 경쟁업체들이다. 특히 일본과 중국 업체들이 크게 이득을 볼 것이다. 분리막 사업에서 세계 1위 업체는 일본 아사이카세이고, SK이노베이션과 도레이가 2위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일본 정부가 부품·소재를 무기로 한국 첨단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에서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분리막 산업까지 흔들리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인력 유출로 생긴 싸움, 3차전까지 번져

이에 대해 LG화학 측은 “사익 추구가 목적인 기업 간 송사에서 국익을 내세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선다. LG화학 관계자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소송을 하는 것이 맞다. 국내 기업이 특허나 영업비밀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해외 경쟁사들의 표적이 될 공산이 크다. 국내 기업 간 문제라고 특별히 취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식재산권 침해를 문제 삼지 말라고 하면 어떤 회사도 먼저 기술 연구 및 개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서로 핵심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해야 장기적으로 국가 산업 및 경제발전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회사의 분쟁이 처음 불거진 것은 4월. LG화학이 미국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 LG화학은 소송 이유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을 기점으로 2차 전지 관련 핵심 기술이 SK이노베이션 측으로 다량 유출된 구체적인 정황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소전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LG화학은 5월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LG화학이 말하는 증거는 인력이다. 최근 2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인력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다. SK이노베이션이 이들을 이용해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등을 함께 빼갔다는 게 LG화학의 주장이다. LG화학은 소송 전인 2017년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영업비밀, 기술 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 절차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같은 의혹 제기와 관련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먼저 이직 인원 가운데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직급이 높은 사원은 드물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LG화학에서 이직해온 직원 가운데 팀장급은 1명뿐이고 나머지는 대리, 과장급이다. 게다가 이직자들이 입사지원서에 쓴 내용은 전 직장에서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기술이나 영업비밀 관련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일부 내용도 현재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전혀 다른 것이라 전부 사용하지 않고 파기했다. 지금 LG화학 측은 영업비밀을 침해당했다고 주장만 할 뿐 구체적인 침해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양사 간 싸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9월 3일에는 SK이노베이션이 LG전자와 LG화학이 자사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ITC 맞소송에 나서 2차전으로 이어졌고, 27일 LG화학이 다시 특허 소송에 나서면서 3차전이 불붙었다. 양측의 소송전이 국내 기업 간 제 살 깎아먹기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9월 16일 문제 해결을 위해 회동했으나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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