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로 홍성빌딩. 주택가 왕복 8차로 대로변에 위치한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용 빌딩이다. 하지만 이곳 지하 1층에는 다른 데서 보기 어려운 시설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철제문을 열면 100m² 남짓한 사무실 공간이 나오는데 그 절반 정도를 투명한 유리벽이 막고 있다. 벽 안쪽으로는 구내식당 식판을 올려놓은 듯한 트레이카트(수직 재배단) 7개가 자줏빛 조명을 받으며 나란히 서 있다. 새싹삼을 키우는 설비다.
유리문을 열고 트레이카트가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 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실내 온도 21도, 습도 94%라는 숫자가 선명한 온습도계와 태양광과 같은 파장을 뿜어내는 자줏빛 발광다이오드(LED)등을 빼면 특별한 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비밀은 식판처럼 트레이카트에 얹힌 스티로폼의 밑에 있었다. 새싹삼이 빼곡하게 올려져 있는 스티로폼을 들추자 30분마다 20초가량 물을 분사하는 미니 스프링클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 여가활동에 머문 도시농업의 틀을 깨다
이곳은 ‘해피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스마트팜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봉천역 5번 출구 앞 복개천도로 한복판, 사무용 빌딩의 지하에 이런 시설을 설치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정원 대표는 “2015년 수도농업사관직업전문학교(서울 용산구)를 세우고 학장으로 일하면서 자투리땅이나 옥상 등을 활용하며 여가활동 수준에 머무는 ‘도시농업’의 한계를 깨뜨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작물을 제대로 키운다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2014년 한국스마트농업생산자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지식도 자신감을 갖는 데 한몫했다.
제대로 된 스마트팜을 만들기 위해 시스템 기술자와 식물 종자 연구자, 농생명과학대 교수 등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작물은 당시 나빠진 건강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에 관심을 갖다가 알게 된 새싹삼으로 정했다. 6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최적의 온도, 습도, 물 분사량, 물 분사 주기 등을 찾아냈다. 2016년 5월 말 그는 교직원 등 다섯 사람과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스마트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1, 2년 된 묘삼을 들여와 20일 정도 재배한 뒤 판매한다. 1년 365일 자연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18번 재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산에서 키우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하루 12시간 동안 24번 분사한 물이 묘삼에 묻은 농약 등을 깨끗이 씻어내기 때문에 뿌리는 물론 잎과 줄기도 통째로 먹을 수 있다. 삼 한 뿌리에 들어있는 사포닌을 온전히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새싹삼은 인삼의 주요 약리성분인 사포닌이 뿌리보다 잎에 8, 9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스마트팜으로 사회적 경제 가치를 실현하다
해피팜협동조합은 새싹삼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아주대병원과 공동으로 새싹삼 잎 추출물을 이용해 ‘케이움’(‘K’orea+‘움’트다)이라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개발해 최근 시판했다. 이에 따라 1000만 원이던 월 매출도 2000만∼3000만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인삼의 항암 기능을 활용한 치료제도 개발 중이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할 품종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공간도 확장하기 위해 후보지를 물색 중이다.
이와 함께 최 대표가 공을 들이는 분야는 사회적 경제 가치 창출이다. 이를 위해 해피팜협동조합의 운영 모델을 이용해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50시간 정도의 스마트팜 교육부터 창업컨설팅, 한 달 정도의 인턴실습 등을 실비 수준의 비용으로 해준다. 창업을 원하는 경우에는 희망자의 경력 등을 고려해 도시농업형, 카페형, 귀농귀촌형 같은 맞춤형 사업계획도 짜준다. 최 대표는 “퇴직자들이 많이 창업하는 치킨집의 경우 평균 1억5000만∼2억 원을 창업비용으로 쓰고, 월 200만∼3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가 현재 운영하는 스마트팜도 이런 정도의 투자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3D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는 농업에 대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청소년들에게 체험실습장으로 스마트팜도 공개한다. 젊은이들이 농업에 관심을 갖고, 종자 연구나 생명공학 분야에 많이 진출하길 바라는 뜻에서다.
최 대표는 “(해피팜협동조합의 스마트팜은) 실내 공간만 있으면 가뭄이나 비, 태풍 등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365일 연중무휴로 높은 신선도의 고품질 작물 생산이 가능하며, 여기서 생산된 작물은 인근 지역에 판매되는 로컬 푸드여서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도시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였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 기후변화에 맞서는 스마트팜 혁신밸리[기고/남재작] ▼
1951년 이후 10월 태풍이 한반도에 접근한 해는 불과 다섯 번이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세 개가 왔다.
또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1.4도나 상승했다. 기후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던 계절의 순환과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지는 오래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가뭄과 폭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10월의 태풍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때가 올 것이다. 기후는 더 변덕스러워지고 농사짓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경북 상주시, 전북 김제시 등 4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추진하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물을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다수 접목될 예정이다. 스마트 농업기술로 무장한 청년농업인의 육성도 함께 진행돼 농촌 고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술이 없어서 이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장을 창출할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을 통해 시설농업이 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한 셈이다. 이제 연구소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때다.
시설원예에서 시작된 스마트팜은 축산과 밭농업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동안 과학영농을 통해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을 만들며 사계절 내내 안전한 농산물을 국민에게 공급했다면, 이제는 스마트농업을 통해 기후변화를 이겨낼 농업 기반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기후변화에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도록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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