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대기업 신입사원이 사내 벤처를 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내 벤처는 대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사내에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벤처 팀을 말한다. 사내의 우수 직원들이 그동안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도전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SK텔레콤은 매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신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을 진행하고 1등한 팀에 사내 벤처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신입사원들에게 입사하자마자 스타트업처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선발된 루키팀은 약 5개월 동안 기존 사업부와 독립적으로 일하면서 아이디어를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하고 사업화 심사를 받게 된다.
2019년에는 신입사원 김준, 남소원, 유채영 등 3명의 매니저가 루키팀으로 사내 벤처에 도전했다. 이들은 사내 벤처 활동 기간에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설계하고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사내 벤처 활동과 성과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2019년 10월 15일자(283호)에서 정리했다.
○ 스스로 그라운드 룰을 세우다
루키팀은 근무 첫날부터 SKT타워 본사가 아닌 인근 스타트업 코워킹 스페이스의 독립된 사무실로 출근했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고, 별도의 업무 보고 절차도 없을 정도로 자유가 보장됐다.
루키팀은 제한된 기간에 목표를 달성하려면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 원칙, ‘그라운드 룰(ground rule)’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평소 팀 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체적인 룰을 정했다. 예컨대 회의를 할 때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주고받는 ‘아이데이션(ideation)’ 과정에 그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구체화된 의견을 갖고 와서 시간 낭비를 줄이기로 했다. 또 토론이 과열될 경우를 대비해 다 같이 ‘셀카’를 찍는 것도 규칙으로 정했다. 예컨대 의견 대립이 심해진다고 느껴지면 ‘수박’ ‘포도’ ‘자몽’ 같은 과일 이름을 외치면 자동으로 단체로 셀카를 찍자는 식이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할 때는 저절로 웃게 돼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풀렸다. ○ 현장에서 고객 만나며 가설 수정
루키팀이 공모전에서 우승한 최초의 아이템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건설근로자 관리 솔루션’이었다. 각각 정보기술(IT)과 경영을 전공한 팀원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루키팀은 건설 현장에서 해답을 찾기로 했다. 이준 매니저는 “현장 경험을 위해 경기 이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직접 일용직 근로자로 일한 것은 사내 벤처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땄다. 건설 근로자들의 입장이 돼 보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근로자들이 일하는 시간을 정확히 체크하고 싶어 할 것이다”란 팀의 당초 가설이 틀렸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로자들은 시간을 체크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찾기를 바랐다. 남소원 매니저는 “실제 현장에서 잠재 고객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진짜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고, 가설을 실제 고객 입장에서 재설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Why not SKT? 피벗 통해 재도전
하지만 건설노동자를 위한 IT 플랫폼을 구축하려던 이들의 노력은 법적 한계에 부닥쳤다. 이 솔루션은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실현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루키팀은 활동 기간 종료 시점이 두 달이 채 안 남은 시점에 사업 모델을 완전히 변경하기로, 다시 말해 ‘피벗(pivot)’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없는 만큼 팀원들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약 2주간 50여 개의 아이디어를 상호 제안하며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SKT 내부 구성원들을 설득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 주변 사람들은 “Why SKT?”, 즉 SKT가 이 사업을 해야 할 당위성을 먼저 따졌다. 하지만 팀원들은 SKT가 잘할 수 있는 전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고의 틀 안에 갇히기는 싫었다. 유채영 매니저는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글로벌 창업가로 성장하려면 “Why SKT?”가 아니라 “Why not SKT?”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출과 시장 규모를 계산하는 데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고객의 불편함을 기준으로 아이디어를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재도전한 아이템이 바로 ‘씨밀러(SeeMealer)’라는 증강현실(AR) 외식 플랫폼이다.
○ 멈추지 않는 도전
씨밀러는 AR 기술을 활용해 테이블 위에 실제 음식이 나온 것처럼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식당 주인과 셰프가 고객에게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서비스다. 이들이 아이템을 확정하고 AR 개발자, 3차원(3D) 모델링 업체와 협업해 프로토타입 앱을 제작하기까지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루키팀만의 일하는 방식을 구축한 덕분이다. 예컨대 이 팀은 노트북이 아닌 포스트잇과 타이머, 네임펜을 갖고 회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안건 및 과업을 복잡한 정도에 따라 구분한 후 키워드로 정의해 최대한 빠르게 해결 방안을 실험하고 의사 결정을 반복했다. 의사 결정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 3분에서 최대 30분까지 제한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들의 최종 아이템은 아직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사업화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팀원들은 현재 각자 사업부 부서로 복귀해 일하면서도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남 매니저는 “이 아이템은 고객에게 혁신적인 외식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AR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5G 핵심 콘텐츠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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