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진입을 막았던 중고자동차 소매 시장의 규제가 6년 만에 풀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완성차, 수입차, 렌터카 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연간 200만 대 이상의 거래 규모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레몬 마켓(정보 비대칭 시장)’으로 소비자 불신이 적지 않은 중고차 매매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기존 중소 사업자는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11일 동반성장위원회에 따르면 6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중고차 소매판매업이 대기업의 점유율이 갈수록 하락해 생계형 적합업종에 일부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제출하기로 의결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로 기존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대체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됐다. 중고차 소매판매업은 2013년 3월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었다.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중기부는 일반적으로 동반위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대기업의 중고차 소매 시장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기부는 내년 5월 초까지 최종 결정해야 한다.
동반위의 결정을 가장 반기는 곳은 수입차 업체들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21개 수입차 브랜드는 직접 제품을 검증한다는 의미에서 ‘인증 중고차’라는 이름을 내세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중고차 소매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어 추가 투자와 사업 확장을 할 수 없었다. 올 초 중고차 매매 영세 사업자들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하자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수입차협회 관계자는 “다수의 수입차 업체가 규제가 풀리면 중고차 소매 시장에 대한 신규 투자와 추가 고용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대기업 진출이 가능했던 중고차 도매 시장에서 활동했던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도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글로비스, 롯데렌터카, AJ렌터카 등은 중고차 사업자들에게 경매 방식으로 중고차를 도매 판매한다. 규제가 풀리면 직접 매장을 내고 소매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어 국내 완성차 업체가 직접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들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1000명)를 보면 응답자의 76.4%가 중고차 시장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고, 51.6%는 국내 대기업이 진입하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SK그룹은 규제 때문에 지난해 중고차 사업 계열사의 지분을 국내외 사모펀드(PEF)에 매각했다. 나머지 규모가 큰 업체는 AJ셀카(AJ그룹 계열), 케이(K)카(사모펀드 한앤컴퍼니 계열), 오토플러스(사모펀드 VIG파트너스 계열) 등 3곳에 불과하다.
중고차 매매 사업자 3000곳을 가입사로 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반발이 거세다. 8일 성명서를 내고 동반위 결정에 “유감”이라며 집회 등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연합회 관계자는 “대다수 중고차 매매 사업자가 인건비와 임차료 등을 감당하면서 적은 수준의 이익을 내고 있는데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대상에서 제외하면 어떻게 하라는 소리냐”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중기부와 동반위가 ‘상생협약’을 조건으로 걸고 규제를 풀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이 영세 사업자와 협업에 나서도록 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대형 중고차 업체 관계자는 “동반위도 산업경쟁력 향상과 소비자 영향을 고려해 시장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정부도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중재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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