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한국에서 (소재·부품 등을) 수입해 타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했던 중국도 이제는 부품을 스스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한국의 위상을 강화하려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강화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장지상 산업연구원(KIET) 원장은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제1회 동아 뉴센테니얼 포럼’ 기조강연에서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기술의 자립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분야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취약하다 보니 일본의 수출 규제에 온 나라가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 원장은 “소재·부품 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일본과의 무역역조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혁신금융’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정부, 금융회사, 중소 제조기업 관계자들은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성장잠재력 둔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제조업을 살리려면 금융회사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혁신제조기업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필요한 곳에 자금을 지원해야 국가 경제가 웬만한 외부 악재에도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다는 얘기다.
○ 금융위, “소부장 육성 위해 혁신금융에 속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수입이 까다로워지자 금융권에서는 국내 제조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제조업의 허리’로도 불린다. 특히 친환경, 스마트화, 디지털화 등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이 분야의 기술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 분야의 기술 자립은 최근 주요국들이 자국 산업을 위한 보호무역정책을 잇달아 도입하면서 더욱 절실해졌다.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로 제품을 대량생산했던 ‘세계의 공장’ 역할을 접고, 첨단산업과 고급 소비재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꾼 것도 한국에 위협 요인이다. 장 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외국에 의존하던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빨리 국산화해야 한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그 노력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재·부품·장비 등 제조업 육성을 위한 혁신금융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동산(動産)에서 특허까지 담보에 포함하는 일괄담보제도의 도입을 추진 중”이라며 “미래 지향적인 안목으로 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술과 신용을 연계하는 통합여신심사 모형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본시장에서는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술기업에 대한 상장특례제도를 도입했다. 유망한 기업이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하도록 상장 문턱을 낮춘 것이다. 또 성장지원펀드를 통해 내년까지 기술기업에 8조 원가량을 공급할 계획이다. 은 위원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된 금액이 올해만 4조 원대에 이르고, 창업기업은 10만 개에 이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 “금융회사가 먼저 혁신제조기업을 연구하라”
이날 기업인과 학자들은 정부가 제조업을 더 효율적으로 지원해주길 주문했다. 강재원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관련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각각의 특성이 다르니 앞으로 정책을 나눠 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곽노성 한양대 교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화학제품 안전규제가 문제가 되는데, 환경부는 환경만 생각하는 등 관련 부처가 각자의 일에만 신경 쓴다”며 “정부는 한 팀이기 때문에 하나의 목표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처간 조율에 대해 선욱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장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혁신성장 정책금융협의회가 마련돼 부처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조만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강력한 주문에도 금융권의 보수적인 대출 관행이 여전하다는 불만도 나왔다. 지금 당장은 매출이 초라해도 성장 가능성 있는 기업에 금융권이 적극 투자해야 혁신기업들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고영길 에스다이아몬드공업 대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하는 100대 강소기업에 신청했는데 중기부가 기업의 안정성과 매출을 중시했다”며 “정부에 정책 자금을 신청할 때는 담보를 계속 요구한다”고 하소연했다.
금융권이 ‘숨은 진주’ 같은 중소기업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장석인 한국산업기술대 석좌교수는 “중국 알리바바는 기업의 거래 내용을 관찰해 신용을 판단한 뒤 소액 자본을 대출 중”이라며 “우리 금융회사들도 새로운 방식으로 기업 성장을 도울 방법을 찾고 각 분야에서 부상할 기업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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