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창업 실패후 재도전, 나이 많다고 성공 힘든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中 연구진, 재창업자 268명 설문… 이전에 실패한 기업 규모 작거나
가족에게 전폭적 지원 받으면 실패 딛고 빠르게 재창업 나서

흔히들 나이가 어려야 창업 실패 시 빨리 재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17세에 교통정보를 수집하는 회사를 만들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2년 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고 불과 31세 되던 해 억만장자가 된다. 1983년생인 드루 휴스턴은 21세에 학교를 휴학하고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했다가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24세 때 재창업에 도전해 드롭박스를 창업했다. 이를 통해 40세 미만 미국인 중 18번째 부호가 됐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게 재도전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추스젠(저時健)의 고령 재창업 사례다. 그는 중국의 창업자로 한때 ‘담배왕’으로 불리며 최고의 수익을 거뒀으나 부패 혐의로 구속됐다. 74세의 나이에 출소해 바로 재창업에 뛰어들었고, ‘추씨 오렌지(Chu’s Orange)’를 성장시켜 큰 성공을 거뒀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덕에 풍부한 경험을 살렸고, 빠르게 재창업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중앙재경대와 베이징대 교수로 구성된 연구진은 나이와 재도전 속도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로 했다. 이들은 중국 보하이 경제구역에 입점한 창업자 5789명을 대상으로 2015년 7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중 창업 실패 후 재도전 경험이 있는 창업자 268명을 연구 표본으로 삼았다. 재창업에 도전했을 당시 나이를 물어보고, 창업에 실패한 연도와 재창업이 이뤄진 연도의 시간 차이를 살펴봤다.

그 결과, 재도전할 당시 창업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재창업이 이뤄지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구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나이의 불리함이 해소될 수 있는지 살펴봤다.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찾아냈는데, 첫 번째는 이전에 실패한 기업의 규모가 작다고 판단될 때, 두 번째는 가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믿는 경우 비록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실패하고 재도전에 임하더라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빠르게 재창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왕 창업을 할 것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라고 한다.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다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다면 여러 가지 상황과 심리적 두려움 때문에 재도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조건이 나이의 악영향을 상쇄시켜 준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추스젠의 경우에도 이전 사업의 실패가 본인으로서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판단했다. 또 가족으로부터 전폭적인 금전적, 심리적 지원이 있었다고 믿었기에 재창업이 빨랐다.

최근 건강한 노년층 증가로 인해 노년 창업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55∼64세 그룹의 창업 증가율이 전 연령에서 가장 높았고, 일본은 60대 이상이 전체 신규 창업의 32%를 차지했다. 이른바 ‘100세 시대’를 맞은 한국도 시니어 창업 증가율이 청년 창업 증가율보다 1.7배 높다. 연구에서처럼 나이가 많을 경우 창업 실패 후 재도전의 속도가 느릴 순 있다. 다만 실패 규모를 작게 하고 가족의 지지를 많이 받는다면 재창업의 빠르기는 나이와는 상관없을 수 있다는 본 연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배태준 한양대 창업융합학과 조교수 tjbae@hanyang.ac.kr
#창업 실패#재창업자#재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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