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오모 씨(45)의 일과 중 상당 부분은 난수표 같은 후배들의 태도와 심리를 해독하는 일이다. 회식 자리에서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눠 보면 분명 열정이 넘치고 꿈이 큰 세대 같은데, 그 열정이 희한하게도 일에 사용되지 않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성에 안 차는 업무 결과물을 보고받을 때면 그는 감정이 드러날까 봐 입을 앙다문 채 최대한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업무 과정의 어디가 잘못된 건지 자책하며 화를 삭인다.
“일을 시키면 ‘네’ 하고 따라와 줬으면 좋겠는데, 다들 자기주장이 강해서 그런지 이 일이 왜 필요한지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밀어붙이는 게 맞는 일인가 싶고요. 위에 보고하려면 결국 제가 더 뛰고 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40대 “20, 30대는 버릇없고 50대는 보수적”
대부분의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인 40대는 임원인 50대와 실무부서의 보병 격인 20, 30대 사이의 다리 역할을 맡고 있다. 위에서 떨어지는 지시를 아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수행해 ‘원팀’으로서 성과를 내던 시대에 일을 배워 온 40대는 개인의 자율성이 우선시된 사회의 관리자 업무를 해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본보가 지난달 18일부터 일주일간 기업과 공무원, 국회 등 정치권의 40대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이들은 20, 30대는 물론이고 그들의 상사인 50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40대가 보기에 후배들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새로운 생각과 열정으로 일하는 세대다. 하지만 조직에서 함께 부대끼며 생활할 때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한 40대 기업 관계자는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무한 집중하는데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희생하지 않는 세대”로 20, 30대를 평가했다. “밝지만 버릇없고 배려심 없다”는 날 선 비판을 한 이들도 있었다.
50대 선배들에 대한 불만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의사결정을 내려주는 장점이 있지만 보수적이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커 조직의 발전 속도를 늦춘다는 것이다.
가장 큰 불만은 40대에 대한 배려 부족이다. 한 40대 국회 보좌관은 “50대는 40대에게 20, 30대를 이해하라고 하면서 낀 세대인 우리는 자기들과 같은 세대인 것처럼 대한다”며 “50대가 조직에서 느끼는 무한한 책임감을 40대에게 똑같이 바라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 2030 “40대는 진화한 꼰대”
조직 융화에 어려움을 겪는 40대를 바라보는 선후배들의 시각은 어떨까.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들은 40대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조직을 위해 노력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50대 선배들은 40대가 ‘X세대’ 특유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버리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한 대기업 임원 A 씨의 말이다.
“40대는 정작 일이 주어져야 행동에 나서면서도 자기들이 일을 제일 많이 한다고 말해요. 알아서 일을 찾아 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위만 바라보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도 50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해 일을 성사시키면 또 전부 자기 능력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보 설문 결과 스스로를 ‘꼰대’로 여기는 40대의 비중은 전체의 12.1%에 불과했다. 하지만 20, 30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후배들과 부단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결국 의사 결정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 ‘진화한 꼰대’의 형태가 40대라는 것이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11년 차 직장인 박모 씨(37)는 “업무 지시를 내릴 때 이게 왜 필요한 일인지 설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위’에서 떨어진 일이라는 점만 강조한다”며 “중간 관리자로서 필터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기준 없이 업무를 깔때기처럼 받아서 밀어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른 30대 직장인은 “우리가 보기엔 이미 기득권인데 자신들이 가장 힘들고 애쓰는 세대라고 말할 때마다 허탈한 감이 있다”며 “나도 후배들한테 저렇게 보이겠구나 싶어 말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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