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참 빨리 드셨습니다. 직원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을 봤는데 설렁탕 같은 메뉴는 그냥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죠. 그만큼 일에 중독돼 있었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대우그룹에서 일하며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의 모습을 지켜봤던 한 직원 A씨의 회고다. 익명을 요청한 이 직원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회 초년병 시절 대우그룹에서 김 회장의 모습을 보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가까이에서 김 회장을 보좌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당시 사회 초년병이었던 대우그룹 젊은 직원들에게 김 회장의 일에 대한 열정은 전파가 됐다”며 “밥을 빨리 먹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눈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워커홀릭으로 평생 몸에 밴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스스럼 없이 직원들과 잘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김 회장 본인은 잘 노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직원들 행사에서 직원들과 어울리려고 항상 노력했다”며 “수십년 전이지만 격식을 잘 따지지 않았고, 소탈한 모습이 젊은 직원들에게 보였다. 직원들이 노래하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했고 박수도 쳐 줬었다”고 회고했다.
80년대 후반 옥포조선소(現 대우조선해양)에서 파업이 발생했을 때 김 회장은 작업복을 입은 채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경영을 했다. 당시 파업의 이유 중 하나가 조선소 식당의 밥이 맛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김 회장이 직접 확인을 하러 직원 식당에서 밥을 며칠간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A씨는 “당시 대우그룹 사보 이름이 ‘대우가족’이었는데, 조선소 직원들이 식당 밥이 맛이 없다며 ‘우리는 대우가축이냐’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며 “이 사실을 들은 김 회장이 직접 조선소에 가 직원들고 밥을 먹으면서 현장경영을 했는데 이후 밥맛이 실제로 좋아졌다”고 전했다. 당시 김 회장은 1년여간 조선소에 상주하면서 직원들과 소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김우중 전 회장은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대우그룹은 1990년대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를 맞은 후 1999년 8월 채권단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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