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2·16 부동산대책에서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실수요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 10가구 가운데 3가구 이상이 9억원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규제 여파가 대출을 통해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실수요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시세 9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현행 40%에서 20%로 대폭 축소했고, 15억원 초과 ‘초고가 아파트’의 경우 주담대를 전면 금지했다.
12·16 대책에서 규제가 9억원 초과 주택에 집중된 점을 고려하면, 정부는 9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려는 상당수가 시장 안정을 해치는 투기 수요라고 본 것이다.
정부는 대책 파급력 확대를 위해 투기 수요 기준도 대폭 낮췄다. 종전 규제 대상을 공시가격 9억원(시세 약 13억원)에서 시세 기준 9억원으로 낮춘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규제 적용 대상 기준을 단숨에 4억원 낮추면서 대책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12·16 대책의 불똥이 애먼 실수요자에게도 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서 내 집 마련을 계획한 실수요자와 특히 30대의 기회를 박탈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9억원 초과 주택이 급증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3일 기준 서울 9억원 초과 아파트는 전체(125만1791가구)의 36.6%(45만8778가구)다. 서울 아파트 10가구 중 적어도 3가구 이상은 정부 규제 대상인 셈이다. 9억원 초과 아파트는 지난해 말(38만4125가구)보다 7만5000여가구 늘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도 11월 현재 8억8014만원(KB부동산 기준)이다. 중위가격은 아파트값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장 가운데 있는 가격으로 시세를 판단하는 지표다. 서울 중위가격이 9억원에 육박했다는 것은 수요가 몰리는 아파트는 적어도 9억원 이상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 소장은 “대출 규제는 현금 부자들만 서울 집을 살 수 있게 하는 대책”이라며 “갭투자자들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서민과 실수요자 등 선의의 피해자를 낳으며 현금 부자를 위한 잔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도 “서울 집값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대출 규제 강화로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어려워지고, 현금 부자의 투자 기회가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9억원이 넘는 집을 살 수 있는 30대는 소수에 불과해 ‘사다리 걷어차기’ 지적은 일부에 국한된 얘기라는 것. 또 9억원 초과 아파트 대부분이 강남3구에 집중됐다는 내용이다.
실제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9억원 초과 아파트의 절반에 달하는 22만8041가구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몰려 있다. 구별로 강남구 8만6699가구, 서초구 6만1983가구, 송파구 7만9359가구다. 강남구(92.9%)와 서초구(93.1%)는 지역 아파트 90% 이상이 9억원이 넘는다.
나머지 절반은 최근 ‘마·용·성’으로 불리며 집값이 급등한 마포구(2만3678가구), 용산구(2만499가구), 성동구(2만7131가구)와 목동이 있는 양천구(3만956가구)에 몰렸다. 이 밖에 강남3구와 인접한 강동구(2만7779가구)와 동작구(1만8733가구)도 서울 기타 지역보다 많았다. 모두 서울 집값이 요동칠 때마다 앞다퉈 올랐던 지역이다.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30대 A씨는 “이번 발표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맞다”면서도 “사실 대출을 내서 강남에 들어갈 수 있는 30대가 얼마나 되겠냐. (사다리 걷어차기 지적은) 전문직과 고소득자에 한정된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무리한 대출을 끼고 부동산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을 돕는 것보다 시장 안정을 위해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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