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엘시티가 끌고, 재건축이 밀고…고삐 풀린 부산 부동산

  • 여성동아
  • 입력 2019년 12월 23일 15시 50분


규제 해제하자 고삐 풀린 부산 부동산

최근 부동산 불패를 목격한 많은 이들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부산을 주목하자 부산 부동산 시장이 다시금 들썩이고 있다.

대한민국 3040 모두가 부동산 전문가인 시대다. 월급 꼬박꼬박 모아 성실하게 살며 내 집 마련 기회를 엿보던 이들은 과감하게 대출받아 아파트를 매입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힘들다. ‘강남 집값은 오늘이 최저가’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최근 몇 년 사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 한 푼이라도 더 벌 때 부동산 지식을 총동원해 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이들이 전국에 부지기수로 늘었다.

이들의 레이더망은 서울과 수도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각종 규제와 세금 폭탄을 견디며 자금 출처까지 조사받아야 하는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은 부담이 크다. 반면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하고, 수요가 꾸준한 광역시들은 훌륭한 투자처로 보일 수밖에 없다.

2년 2개월 만에 부산 아파트값 상승 전환

특히 정부 규제가 막 풀렸다면 누구나 주시하게 된다. 그간 규제에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했던 집주인과 수요자들이 대거 거래에 나서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6일 국토교통부에서 부산광역시의 동래구, 수영구, 해운대구 등 3개 구에 대해 조정대상지역을 해제한다고 발표하자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거래 움직임은 지표로 나타났다. 한국감정원이 지난 11월 둘째 주 발표한 주간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부산은 2017년 11월 이후 이어졌던 하락세가 2년 2개월 만에 상승 전환해 11월 11일 기준 0.1%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3개 구의 약진이 두드러졌는데 해운대구 0.42%, 수영구 0.38%, 동래구 0.27% 순이었다.

이는 조정대상지역 해제에 따른 부동산 상승 기대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수치다. 해운대구는 부산에서도 가장 주거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특히 우동과 중동, 재송동의 상승폭이 컸다. 수영구는 최근 몇 년 사이 남천동과 광안동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매매가 강세를 보였다. 동래구 역시 전통적으로 주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명륜동과 온천동 위주로 올랐고, 남구는 대연동 신축 위주로 상승 전환했다.

부산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 11월 18일 정점을 찍었다가 주춤해지는 모양새다. 12월 첫째 주는 11월 넷째 주 상승률인 0.17%보다는 다소 감소했다. 지나치게 급등한 아파트 가격에 부담을 느낀 매수 대기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매도인과 매수인 간에 팽팽한 눈치 보기 형국이 벌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 부동산 시장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2월 초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를 찾았다. 해운대구는 해운대 해수욕장과 인접한 우동과 중동, 그리고 수영강 옆으로 조성된 재송동 아파트 단지 위주로 수요가 꾸준히 형성돼 있다. 수영구 역시 광안리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광안동과 민락동, 그리고 재건축 아파트가 모인 남천동의 수요가 꾸준하다. 동래구는 외지인에게 생소할 수 있으나 전통적으로 주거지가 밀집한 데다 명문 학교가 모여 있어 과거에는 ‘부산의 중심’이라 불릴 정도로 살기 좋았다. 한동안 쇠락했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재개발, 재건축이 지역별로 추진돼 관심이 높아졌다.

규제 해제 후 프리미엄 8억원 붙은 해운대 엘시티
출입구에서 올려다 본 엘시티 더샵.
출입구에서 올려다 본 엘시티 더샵.

부산에서 가장 화제의 중심에 선 아파트는 해운대구의 ‘엘시티 더샵’이다. 부산은 2000년대 조성된 신도시 센텀시티와 마린시티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몰려 있는데 그동안 이들이 부산시 아파트값 초고가를 경신해왔다. 해운대아이파크, 해운대두산위브더제니스, 해운대힐스테이트위브 등이다.

하지만 지금은 엘시티 더샵이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엘시티 더샵은 총 3개 동으로 구성돼 있는데 85층 높이의 아파트 2개동(A·B동)과 관광호텔 등이 들어서는 101층 높이의 랜드마크 타워 1개동(C동) 등이다. 랜드마크 타워는 411m 높이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엘시티 더샵 아파트의 높이는 각각 339m, 333m로 국내 주거 시설 중에는 1, 2위를 기록하게 됐다. 엘시티 더샵의 전용면적은 144?244m²로 총 882채 규모다. 2019년 11월 30일, 착공 4년 2개월 만에 입주를 시작했다. 호텔, 워터파크 등 상업 시설 개관은 2020년 6월로 예정됐다.

엘시티 더샵 인근은 주로 상업 시설이 밀집해 공인중개사무소를 찾기 어려웠다. 간이 사무실을 차린 A공인중개사무소에는 중개인 대여섯 명이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었다. 어떤 물건을 찾느냐 묻는 김모 실장에게 가장 작은 크기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해운대 해수욕장 뷰가 나오는 A동 1·2·3호 라인과 B동 3호 라인은 프리미엄이 높게 형성돼 있다”며 “특히 A동 2호 라인은 거실과 모든 방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가장 작은 전용 144㎡임에도 프리미엄만 5억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이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그는 “가격이 높지만 거래는 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엘시티 더샵을 사기 위해 지금 부산 사람보다 외지인들이 더 난리예요. 조정대상지역 해제 이후 매일같이 값이 오르고 있어 어디가 고점인지 알 수 없어요. A동과 B동의 3호 라인은 바다를 남동, 남서로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데다 펜트하우스를 제외하고 가장 큰 전용 196㎡ 크기라 투자 가치가 높죠. 집주인들이 프리미엄을 8억원까지 불러 분양가까지 포함하면 29억~30억원가량이에요. 분양 당시 3.3㎡당 평균 3천만원에 나왔는데 지금은 4천만 원을 찍었어요. 며칠 전에 29억원에 실거래가 됐죠. 부산에서 3.3㎡당 4천만원짜리 아파트가 나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엘시티 더샵의 가격은 조정대상지역 해제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김모 실장에 따르면 A동 4~6호 라인과 B동 1·2호, 4·5호 라인은 옆 동에 가려 바다를 제대로 조망하기 힘들다고. 이런 이유로 지난해 10월까지 이들 매물은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다. A동 6호 라인 매물을 가지고 있던 집주인은 10월까지 마이너스 5천만원에도 집이 팔리지 않아 속앓이를 하다가 조정대상지역 해제 후 곧바로 1억원의 프리미엄을 붙여 팔았다고 한다.

“잔금을 치를 능력이 되지 않는 집주인들은 2월 7일 잔금 완납 기일까지 집을 팔려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1월 말 설날 연휴 전후로 손바뀜이 대거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사실 부산에서 잔금을 치를 수 있는 소득 수준의 사람이 많지 않아요. 서울 등 외지 투자자들이 사들이지 않는다면 2월 이후에는 급매물이 속속 나올지도 모르죠.”

수영구 대장주 삼익비치, 투자 문의 쏟아지자 매물 사라져
엘시티 더샵 고층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수욕장.
수영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마다 매물 알림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엘시티 더샵 고층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수욕장. 수영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마다 매물 알림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수영구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전통적으로 관공서와 학교 등이 밀집해 살기 좋은 동네로 수요가 끊이지 않는 남천동에서도 대장주로 꼽히는 ‘삼익비치타운’ 아파트에 관심이 뜨거웠다. 해당 아파트는 광안대교를 지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으로 부산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저기가 어디냐”고 할 정도로 전시 효과가 좋아 ‘전국구 아파트’로도 불린다.

또한 지어진 지 40년이 지나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투자처로도 유망하다. 지난해 10월 한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동산 투자 귀재로 불리는 가수 방미가 해당 아파트를 콕 짚어 ‘부산 최고의 투자처’로 지목한 뒤로 전국에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인근 B공인중개사무소의 최모 실장은 “방미가 TV 광고를 제대로 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삼익비치는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되기 전인 지난해 10월부터 문의가 쏟아졌어요. 그 전까지는 보합세였는데 방송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죠. 11월 초에 규제가 해제되자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투자자들이 내려와 그나마 나와 있던 매물을 싹쓸이했다고 소문이 자자했을 정도예요. 지금 재건축을 앞두고 환경영향평가에 들어갔는데 이후 조합이 설립되면 또 한 번 가격이 뛸 것 같아요. 특히 바다와 바로 붙은 300~315동 라인의 전용 148㎡는 17억~18억원을 호가하고 있어요. 3.3㎡당 3천만원대지만 재건축 이후 4천만원은 훌쩍 넘겠죠.”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원주민이다. 일부는 10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이는 재건축 기간에 부담을 느껴 매도 후 인근 아파트로 이주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데 부산 아파트값이 동반 상승하는 형국이라 집을 팔아도 갈 곳이 없어 매물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집주인 한 분이 연로한데 워낙 아파트가 낡아 살기 힘들다고 매도 후 갈 만한 신축 아파트를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인근 1~2년 사이 입주한 신축 아파트도 규제가 풀리자 1억~2억원씩 올랐고, 10년 차 이상 아파트도 덩달아 올라 집을 넓혀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이사를 포기했죠. 그런데 지금 부산 사람들 중에 그런 경우가 많아요. 외부 투자자들이 집값을 다 올려놔서 실거주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많이 보고 있어요.”

분양 시장도 비슷한 분위기다.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됐어도 분양권은 6개월 전매제한이 걸려 있는 상황. 지난 11월 분양한 서면 ‘롯데캐슬 엘루체’ 아파트의 경우 거래가 불가능하지만 프리미엄 호가는 한 달 사이 1억원까지 올라갔다.

동래구는 현재 재건축, 재개발이 진행됐거나 진행되는 단지가 상당수 있는데 분양권 프리미엄이 상당히 붙었다. 2018년 9월 분양 당시 미분양이 났던 동래구 온천동 ‘동래 래미안 아이파크’의 경우 현재 전용 84㎡의 프리미엄이 2억원까지 올라갔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1천5백만~1천6백만원에 불과했다.

인근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명문 학교도 밀집해 있고, 주거 인프라를 갖춘 교통 요지이기 때문에 실거주 수요가 꾸준해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 사도 2021년 입주할 때는 최소 1억원은 벌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서울에서 부동산 카페 회원들이 ‘1억원씩 벌자’며 관광버스 타고 부산 부동산 잡으려고 내려온다고 해요. 사실 4월 총선 이후 시장 분위기를 봐야겠지만 그래도 이제 막 규제를 풀었는데 향후 3년간은 묶기 힘들 거라고 봐요. 다들 부산 부동산 활황은 한동안 이어질 거로 전망하고 있죠.”

갑작스러운 부산 부동산 호황을 모두가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부산은 2016년 11월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 등이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기 직전까지 전례 없는 부동산 상승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2017년 초까지 상승폭이 줄어들더니 그해 10월 0.06%를 기록한 뒤로 2년 2개월 동안 하락세가 이어졌다. 아무도 집을 사지 않았고, 손해를 보지 않는 이상 팔 수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투자자 다 빠져나가면 집값 누가 떠안나 불안해하기도

이런 이유로 이제 와 뒤늦게 규제를 해제한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중개인들도 적지 않았다. 앞서 만난 A공인중개사무소의 김모 실장은 “부산에서는 ‘엘시티 더샵 잔금 못 치르면 포스코건설이 부도 날 수 있어 대통령이 풀어준 것’이란 소문이 돈다”며 “사실 2019년 초부터 부산 부동산은 보합세를 보여왔는데 지금에서야 규제를 풀어준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의 결정이 표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라고도 지적했다. B공인중개사무소의 최모 실장은 “여당이 표를 의식해 규제를 풀어준 것은 너무도 뻔한 얘기”라며 “총선 이후 분위기가 계속 이럴 경우 언제든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을 수 있어 지금 매입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부산 시민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부산 시민도 적지 않다. 해운대구 우동에 거주하는 60대 사업자 정모 씨는 “이사를 하려고 해도 집이 팔리지 않아 고생을 했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라며 “투자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다고 하는데, 몇 년 뒤 그들이 올려놓은 집값을 감당할 부산 시민이 몇이나 되겠냐”고 우려를 표했다.

사진 정혜연 기자 디자인 박경옥
EDITOR 정혜연 기자

[이 기사는 여성동아 2020년 1월 67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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