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내년 3월 지주사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한진칼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다만 조 전 부사장 측 입장에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막는 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며, 조 회장도 주총을 앞두고 우호 지분 이탈을 막으려 갈등 봉합에 적극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다.
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 측은 조원태 회장 등과 약 3개월 간 공동경영에 대한 협의를 이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이 원하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고, 지난달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측근들이 배제되며 23일 입장 발표에 나서기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3일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사전 협의도 하지 않고 경영상의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진그룹의 주주 및 선대 회장님의 상속인으로서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현재 한진칼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8.94%다. 조원태 회장(6.52%)과 조현아 전 부사장(6.49%)의 지분율은 엇비슷하다. 조현민 전무와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은 각각 6.47%, 5.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의 주요 주주는 KCGI(지분율 17.29%)와 델타항공(지분율 10%) 및 최근 지분을 늘린 반도건설 계열사(한영개발, 대호개발, 반도개발 등 6.28%) 등이다.
조 전 부사장이 다양한 주주와의 협의 가능성을 거론하자, 재계에선 향후 조 전 부사장이 KCGI 등과 접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KCGI 측이 어느 한쪽과 손을 잡기에는 대외적 명분이 부족하단 분석이 많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CGI가 이제 와서 연대할 명분이 없고 그런 식으로 지분을 합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목소리를 내겠다며 등장한 KCGI가 갑질 논란의 근원인 조 전 부사장과 연대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가족 간 협의라는 진단도 이어졌다. 이 연구원은 “조 전 부사장 입장에선 개인 지분율이 낮으니 동생 조원태 회장과 합의하는게 가장 이상적”이라며 “설령 내년 주총에서 조 전 부사장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한) 표 싸움에서 승리해도 얻는게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의 입장 발표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압박용 카드인 만큼, 양측 모두에 가장 유리한 선택지는 ‘갈등 봉합’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여론도 있으니 조원태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 잘 협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면서도 “아직 주총이 세 달 남은 상황에서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조원태 회장 입장에선 KCGI한테 경영권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이 이렇게 나온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며 “경각심을 갖고 타협점을 도출하려 노력하며, 다시 가족회의를 연다던지 우호 지분을 결집시키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사안을 해결할 키는 경영권 보장이란 분석도 이어졌다. 황 교수는 “국내 재벌사에서는 선친의 빈자리를 메꿀 때 ‘형제의 난’ 등이 되풀이됐는데, 갈등을 봉합시키는 최적의 방법은 결국 일정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어려서부터 경영에 참여하고 트레이닝 받은 이들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잃으면 허탈해진다. 결국 계열사 분리라던지 독자적 경영권을 확보할 체제가 마련되는 것으로 (갈등이)귀결될 것”이라며 “조 전 부사장도 경영권이 보장된다는 확신을 주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봤다.
한편, 지분을 야금야금 늘려가는 KCGI의 향후 행보는 주총 이후 뚜렷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23일 한진칼의 주식 지분을 추가 취득해 17.29%로 늘렸다고 공시했다.
재계 관계자는 “주총 표대결에서 조 회장 측이 KCGI를 아슬아슬하게 이긴다면 KCGI는 앞으로도 견제 세력으로 남겠지만, 압도적 표차로 조 회장이 승기를 잡게되면 KCGI의 기세도 한풀 꺾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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