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주부 이모 씨는 34세 며느리와 살면서 옷과 신발 등을 함께 구입해서 공유하고 있다. 60대가 된 후 건강관리에 더욱 철저해진 이 씨는 체중을 10㎏가량 감량하면서 30, 40대가 주로 찾는 날씬하고 세련된 브랜드의 옷을 입는다. 이 씨는 “교회 친구 8명 모임에서 4명이 골든구스 신발을 신고 있었다”면서 “젊고 트렌드한 브랜드를 찾는 주변 지인이 많다”고 말했다.
이 씨가 언급한 골든구스는 빈티지 신발의 유행을 선도한 이탈리아 브랜드로, 주력으로 판매하는 스니커즈 한 켤레 가격이 30만~40만 원대에 이른다. 때 묻은 가죽과 낡아 보이는 밑창 등의 디자인 때문에 국내 유행 초창기에 비싼 신발임에도 헌 신발처럼 보여 ‘엄마에게 등짝을 맞을 수 있는 신발’이란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20, 30대가 선호하는 이 신발을 50대 이상이 적극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홈쇼핑에서 지난해 3월부터 골든구스를 구매한 소비자 중 37%가 50대 이상이었다. 이는 40대(32%), 30대(19%)보다 높은 수치다.
‘오팔세대’가 젊고 트렌디한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오팔세대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출간한 ‘트렌드코리아 2020’에도 소개됐다.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 ‘58년 개띠 또래’ 등을 의미한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센터 연구위원은 “오팔세대는 스스로를 과거의 50, 60대 중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모바일로 최신 트렌드를 접하며 패션, 여행,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9일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그룹 등 3대 유통그룹에 따르면 백화점 홈쇼핑 온라인 등의 채널에서 50대 이상의 ‘젊은 소비’ 트렌드가 뚜렷했다. 신세계백화점에선 50대 이상의 컨템포러리 브랜드(최신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의류·잡화 등의 상품군) 구매 비중이 지난해 42.9%에 달하며 40대(32.7%)와 30대(20.7%)보다 높았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타임·구호·모조에스핀 등 ‘여성캐릭터의류’와 빈폴레이디스 등 ‘트레디셔녈(TD) 여성의류’ 구매 비중에서 지난해 50대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2018년만 해도 40대의 구매 비중이 50% 이상으로 50대보다 더 높았다. 탁세훈 롯데백화점 여성패션부문 치프바이어는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가꾸는 중장년층이 늘어나며 컨템포러리, 캐릭터 의류를 찾는 50대 이상 고객이 매년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롯데홈쇼핑에서 30, 40대를 겨냥해 선보인 의류 브랜드 ‘라우렐’과 ‘지오스피릿’의 50대 이상 구매 비중은 각각 56%, 51%에 달했다. 현대홈쇼핑에서 20, 30대를 주력 타깃으로 노린 ‘에이앤디 양모 롱코트’ 물량의 절반가량도 50대 이상이 구매했다. 주부 이모 씨(50)는 “20대인 딸과 코트, 티셔츠를 함께 입기 위해 젊은이들이 찾는 브랜드의 옷을 종종 구입한다”며 “주변 친구들도 중후하고 다소 화려한 디자인의 부인복 브랜드를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젊고 트렌디한 상품을 찾는 오팔세대가 늘자 관련 마케팅도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 구찌는 70대 모델을 패션 화보에 등장시켰고, 국내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는 77세 최순화 씨를 모델로 발탁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모피 등을 팔던 ‘시니어층’에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를 함께 두고 있다.
오팔세대의 등장은 세계적인 트렌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출간한 ‘2020년 세계경제대전망(The World in 2020)’에서 “만 65~75세 ‘욜드(젊은 노인·Young Old)’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면서 “욜드는 이전 노인들보다 건강하고 부유하다. 그들의 선택이 앞으로 소비재, 서비스, 금융시장을 뒤흔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오팔(OPAL)세대 ::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약자. 베이비부머를 대표하는 ‘58년생 개띠’ 또래를 의미하기도 하며, 다채로운 빛을 내는 ‘오팔 보석’의 특징도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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